“논의 가치 재조명” 람사르총회 결의안
(KBS-TV, 2008.11.9, 취재파일 4321, 천현수 기자)
* 지난 주에 끝난 창원 람사르총회에서 의미 있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세계 114개국에서 생산하고, 많은 국가가 주식으로 하고 있는 쌀은 세계인 칼로리 공급량의 20%를 차지하는 작물이다. 대부분 논에서 재배되기 때문에 논의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 람사르 총회에서 인공습지인 논을 습지로 인정하고 그 가치를 재조명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KBS 천현수 기자의 취재화일과 결의안 원문을 첨부하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앵커 멘트>
지난주 11월 4일 경남 창원에서는 제10차 람사르 당사국 총회가 막을 내렸습니다. 습지보전을 위한 국제적인 환경회의인 이번 람사르 총회에서는 의미 있는 결의안이 채택됐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논을 습지로 인정하고 보호하자는 내용입니다. 이를 계기로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인공습지인 논의 가치를 재조명해 봤습니다.
<리포트> 인도차이나 반도 남동부 광활한 평야 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캄보디아. 해질 무렵 인도차이나 반도에 비가 쏟아집니다. 비가 그치고 한 시간이 지났지만 프놈펜의 최고 번화가는 곳곳이 침수돼 도로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침수는 우기인 여섯 달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씩 반복되고 있고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심해졌습니다.
<인터뷰> 나릇(캄보디아 토지국 공무원) "프놈펜 인구가 늘어 개발을 많이 한 이후 점점 더 물이 찹니다. 정부는 침수 해결을 위해 일본 기업체와 하수도 설치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스떵멘짜이 지역에 대형 펌프를 설치해 물을 퍼내는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는 국토 중앙에 톤레삽 호수가 있어 우기에는 물을 받아들이고 건기에는 물을 흘려보내 홍수와 가뭄을 자연 조절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홍수 자연 조절 능력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프놈펜 상공에서 내려다본 톤레삽강. 도시 외곽에서는 강이 범람해도 논과 호수가 홍수로부터 주거지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놈펜에 가까워지면 사정이 다릅니다. 논을 메운 곳에 대형 공장들이 건설되고 있습니다. 호수마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 5년 동안 주요 호수 4개가 매립돼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이러다 보니 홍수로 넘친 물이 흘러갈 곳을 찾지 못해 도시와 주거지, 공장으로 밀려들어 침수 피해를 내고 있습니다.
<인터뷰> 텝 보니(캄보디아 환경운동 SCW 대표) "과거에는 자연 형성된 호수들이 우기에 범람을 막아 줬습니다. 그러나 매립이 되면서 물을 저장하지 못해 우기에 비가 오면 도시침수가 심해졌습니다."
매립된 논은 가치가 3배 이상 오르기 때문에 프놈펜에 가까울수록 빠른 속도로 논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또잇 솜 이엇(부동산 분양회사 직원) : "도로변은 한 채에 10만 달러, 안쪽은 8만 5천 달러입니다. 도로 쪽은 분양이 끝났고 안쪽에 일부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논의 홍수 조절 기능은 어느 정도일까? 계단식 논과 아무것도 심지 않은 비탈 언덕 모형에 시간당 100밀리미터의 인공강우를 뿌렸습니다. 20분이 지나자 논은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비탈 언덕은 흙이 쓸려 내려갑니다. 논은 벼가 지반을 고정해 논과 논둑의 모양이 그대로 유지되지만 비탈은 흙이 대량으로 유실돼 홍수에 산사태가 났습니다.
논 1헥타르는 2900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전국의 논을 모두 합치면 32억 톤으로 다목적댐 20개의 홍수 조절 기능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난 5년 동안 전국의 대형 홍수 피해 지역은 강원도와 영남에 집중돼 있습니다. 강원도는 논이 적은데다 하천의 경사가 급하고 영남은 도시와 공장이 밀집해 있습니다. 반대로 서쪽은 평야 7개 가운데 6개가 몰려 있어 논이 홍수 피해를 줄여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심재현 박사(국립방재연구원) : "하천변 논은 홍수 치수 면에서 상당량의 홍수를 논이 저수할 수 있다. 3천평, 만 제곱미터의 저류기능은 5천톤이다. 도시가 개발되면 논이 아스팔트 도로로 바뀌면 150-200톤의 홍수량이 증가한다. 만 제곱미터가. 중상류부터 감안하면 도시의 홍수 방어에 큰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수자원 총량은 연간 300억톤. 이 가운데 절반이 논과 관련이 있습니다. 경남 창원시는 1974년 작은 농촌마을에서 기계공업단지로 개발됐습니다. 논과 밭이 없어지고 공장과 주택이 들어서면서 도시 구역이 20%를 넘었습니다.
빗물과 지표수가 스며들지 못하자 지하수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하수 관측공 11개가 나타내는 수위. 공단과 아파트 밀집 지역은 지하 20미터 이상에 지하수가 있지만 공원이나 논이 있는 곳은 2에서 4미터 깊이에 있습니다. 지하수 총량이 3분의 1로 줄면서 도시의 하천이 마르는 건천화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재현 교수(인제대 토목공학과) : "현재는 함양이 없고 지하수도 많이 써 하천에 흐르던 물이 거꾸로 들어가. 공학적으로는 손실 하천이라 한다. 일반적으로는 이득하천인데 창원은 하천물이 거꾸로 흘러들어가 하천 유량이 줄고 생태계가 달라져. 건천화 날수도 늘어나게 되고..."
반대로 논이 있는 지역의 지하수는 가을 가뭄에도 논바닥 아래로 2미터만 내려가도 지하수가 있습니다. 논 옆에 있는 수로는 외부에서 물이 공급되지 않아도 물이 고여 있습니다 지하수는 주변에 있는 또 다른 지하수층이나 하천과 같은 수위를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낮 기온이 34도인 여름날. 도시와 농촌이 접하는 지점을 적외선 열영상 카메라로 본 풍경입니다. 땡볕이 3분 정도 지속되자 아파트 지붕 온도는 64도를 훌쩍 넘습니다. 반면에 논은 29도. 두 배 이상의 온도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인터뷰> 서명철 박사(농촌진흥청 농업과학원) : "도로에 보면 아스팔트는 61.5 올라가고 물이 흐르는 하천은 27.9도 나오고 논은 30도 정도 표시됩니다. 대기로 발산되는 온도가 콘크리트 건물 온도를 논이 흡수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같은 온도 차이는 기압골을 형성해 한 도시의 기상 조건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도시는 산에서 내려오는 산곡풍과 논에서 불어 올라가는 계곡풍이 부딪히면서 도시의 열기를 식히고 오염물질을 배출합니다. 하지만, 논이 있는 자리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바람 통로는 막힙니다.
<인터뷰> 김귀곤 서울대 교수(유엔 생태도시 한국네트워크) : "산이 있으면 택지 개발을 하면 바람 댐이 여기서 들어옵니다. 산에서 계곡에서 들어옵니다. 그런데 계곡에 아파트를 지어버립니다. 그 앞에서 아파트를 지어버리면 바람이 안 들어옵니다."
논의 벼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생산합니다. 외부 공기를 차단하는 밀폐 용기 3개. 첫 번째 칸은 비워두고 나머지 2개에는 각각 벼를 심은 화분 4개와 2개를 넣었습니다. 30시간이 지난 뒤. 아무것도 넣지 않은 통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320ppm, 자연 상태와 비슷하지만 화분 두 개를 넣은 통은 88ppm, 4개를 넣은 통은 58ppm으로 6분의 1로 줄었습니다.
<인터뷰> 박광래 박사(농촌진흥청 농업과학원) : "벼는 CO2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데 이를 흡수해서 광합성 재료로 활용해서 우리가 이용하는 탄수화물과 더불어 산소를 만들어 낸다. 기후 순화, 자연 환경에 좋은 산물을 만든다."
쌀 생산을 제외하고도 이 같은 논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천문학적인 수치가 나옵니다. 댐의 건설비용으로 환산한 홍수조절 기능 44조 3,000억원. 대기정화 기능 7조 1천억원, 수자원보존 1조 7천억, 토양유실 방지 1조 5천억원. 합계 56조 4천억 원. 2009년도 정부예산의 20%에 이르고 국내의 연간 쌀 생산액 9조원의 6배를 넘습니다.
이런 논의 가치가 이번 람사르 총회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총회 폐막일인 지난 4일, 이른바 '논습지 결의안'이 채택됐습니다. 습지로서 논의 가치를 인정하고 논의 생태적 문화적 역할을 키우기 위해 국제적으로 노력한다는 취지입니다.
<녹취> 아나다 티에가(람사르 총회 사무총장) : "국가 간에 쌀 증산과 논 습지 보호라는 두 가지 상충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협력하는 것을 의무로 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논농사를 짓지 않는 국가들의 일부 반대도 있었지만, 논 습지 결의안이 결국 채택됨에 따라 논은 이제 국제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생겼습니다.
중앙아시아 북부 카자흐스탄의 아랄스크, 1970년대까지만 항구도시였던 곳입니다. 얕은 웅덩이로 변한 항구에는 대형 화물선이 흉물처럼 남아 있습니다. 1년 내내 부는 모래 바람에는 유해물질이 섞여 있어서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아랄스크의 유아 사망률은 구소련 국가 중 가장 높고, 빈혈과 호흡장애, 암의 발생률이 높습니다.
<인터뷰> 정 세르게이(아랄스크 주민) : "환경오염 때문에 아픈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이 참고 살고 있습니다."
차량이 달리는 이 사막은 과거에는 물 속, 아랄해였습니다. 물이 증발한 곳에서는 소금기가 굳어져 거대한 소금강을 만들었습니다. 아랄스크 항구에서 70킬로미터를 더 달려야 아랄해가 나타납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컸던 아랄해는 지난 50년 동안 면적의 40%가 줄어 사막으로 변했습니다. 아랄해로 흘러들던 시르다리아와 아무다리아 두 개의 강 상류에 수력발전을 위해 댐을 쌓은 때문입니다.
사막화하고 있는 아랄해 근처에는 반대로 사막이 옥토로 바뀐 곳도 있습니다.
아랄해에서 동쪽으로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벼논에서는 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수확한 벼는 트럭으로 옮겨지고 선별 작업장에는 벼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인터뷰> 주숙 다이예르바이(치리낄리 농장 지배인) : "우리 농장의 벼 경작 면적은 2,325헥타르입니다. 여러 가지 품종이 있는데 소금기에 강한 벼 품종도 재배합니다."
논에 물이 필요한 시기인 3월에서 4월. 텐샨산맥의 눈이 녹은 물이 1년에 한번 사막에 홍수를 일으킵니다. 사막으로 넘쳐 말라버리기 전, 이 물은 관개수로를 따라 논에 공급됩니다. 키즐오르다 지역의 벼농사 면적은 7만 헥타르, 우리나라 전체 쌀 재배면적의 8%에 해당합니다. 중앙아시아의 벼농사는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시작했습니다. 사막에서 벼농사를 지은지 70년이 지난 지금. 논 근처에는 초원과 습지가 생겼습니다. 한반도에서는 겨울 철새인 도요새가 이곳에서는 여름 철새로 날아든다.
<인터뷰> 카리스 벡(농민) : "여러 종류의 철새가 옵니다. 벼 이삭이 올라올 때 가장 많이 옵니다. 오리와 학 종류인데 봄에 와서 겨울에 날아갑니다."
하지만, 논농사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이 같은 풍경을 볼 수 없습니다. 논농사가 끝나는 지점이 황량한 사막의 시작점이 된 것입니다. 중앙아시아에서 논은 사막화를 저지하는 최전선인 셈입니다.
우리나라의 논은 해마다 2만 헥타르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논은 홍수를 막고 국토의 체온을 조절하며 다양한 곤충과 동식물이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논을 단순한 식량기지 정도로만 대접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 천현수 기자, 2008.11.09(22:17)
* 참고 : 람사르총회 결의안 원문(영문) Ramsar cop10_dr31_e.pdf
KBS NEWS 원문보기 http://news.kbs.co.kr/news.php?kind=c&id=1666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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