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폐지, 자신있다면 해보라"
[농업인신문] 2008. 2. 14일 8면 칼럼
김창수/ (사)한국유기농시민연대 사무총장
“농진청 없애는 대신 우리 농업 더 좋게 해 준다고 하잖아?”
경북의 한 농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농촌진흥청 폐지’ 방침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2만여 농업인이 겨울 칼바람을 무릅쓰고 서울까지 올라와 ‘농진청 폐지 결사반대’를 부르짖고 있는 살벌한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느긋함마저 느껴지는 이러한 인식은, 그러나 아직 농진청 폐지 이후에 느껴질 피해가 피부에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이 농업인은 농진청이 폐지되더라도 농림부의 기능을 식품과 수산업 일부까지 합쳐 더욱 강화되기 때문에 농업농촌에 대한 지원도 더욱 많아 질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혹시 인수위는 이런 의견을 위로 삼아 ‘농진청폐지 철회불가’ 방안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에 하나 그렇다면 다음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350만 농업인과 5천만 국민에게 당당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농진청 소유가 될 특허건에 대한 농업인 부담금 지원예산이 세워져 있는가?
정부출연기관화된 농진청이 기관생존을 위해 그동안 개발해 온 종자, 생산체계, 농기자재 등의 기술료를 농업인에게 받는다면? 일례로 벼 종자 하나에 걸린 기술료가 무려 3,000여억원으로 추산되는데 그 외 장미, 선인장, 배, 사과 등 원예종자와 시설원예 및 농기계 등 관련 기술료, 방대한 양의 품목별 재배기술 등의 기술료를 합친다면 천문학적인 액수가 모두 농업인 부담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이 나라에서 농업은 존립자체가 힘들게 될 수 있다. 차기 정부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농업없는 대한민국은 아니라면 농업인 부담인 천문학적 기술료를 국가에서 대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농진청 1년 예산이 2,700억이다.
둘째, 경제논리의 연구체계가 초래할 소외연구 부문은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농진청 역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민간에서 할 수 없는 기술, 즉 시장성은 없으나 공공적 성격의 기초기술들을 연구하고 이를 농업인들에게 보급하는 것이다.
이익 있는 연구에 투자하는 민간연구기관의 성격상 성과가 나기까지 장기간이 걸리거나 경제성이 없는 기초연구 분야의 연구는 소외될 것은 명약관하하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경우 결국 기반기술이 붕괴되면서 농업경쟁력은 급격히 하락할 것이다. 이 분야에 대한 정부의 보완책은 있는가?
셋째, 최정예 농업기술인력의 외국업체 취업에 따른 국가적 지식정보자산 유출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
정부출연기관장은 경제논리에 따라 연구방향 설정이나 인사 관리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연구원은 불안한 고용환경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연구환경으로 인해 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으로 옮길 가능성이 크다. 다국적 기업이 대부분인 국내 종묘업계가 가만히 있을리 없다. 가장 능력있는 연구원부터 농진청을 빠져나가 종국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하급 인력만 남게 된다. 이것이 인수위가 호언했던 우수인력 유치에 대한 청사진인가?
넷째, 농진청 폐지로 야기될 지자체 농촌진흥조직 붕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사실상 농진청이란 상징적 기관이 존재함으로써 명맥유지가 가능했던 지방농촌진흥기관은 어떻게 되나? 그렇지 않아도 지방자치제후 급속히 시군 조직화 되어 가고 있는 도농업기술원과 시군농업기술센터는 농진청 폐지와 동시에 행정직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국 곳곳에 실핏줄처럼 농업기술을 보급하던 기능에 극심한 동맥경화 현상이 예상된다.
다섯째, 농촌진흥청이 담당하고 있던 기술연구 및 보급체계의 중장기적 리모델링 로드맵은 서 있는가?
농진청이 없어지고 난 후 그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조직과 수행체계가 준비되어 있는가? 개편될 농수산식품부 산하 식품산업본부가 농진청의 주요업무를 하게 된다면 농진청을 폐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식품산업본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소비와 유통산업 부문에 그 무게 중심이 있다면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생산부문 조직으로 효율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메니티와 문화 등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 농업 신동력 부문의 발전에 대한 지원방안은 서 있는가? 이들 물음에 대한 선명한 로드맵이 제시되어야 한다.
여섯째, 농업기반 붕괴로 예견되는 외국농산물 및 농업기술 유입으로 인해 국민이 감내해야 할 보건상 불이익과 비용낭비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위의 다섯가지 의문점이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국내 농업붕괴, 그 결과 필연적으로 발생할 외국농산물의 대량 유입에 대한 대책은 있는가? 안전성 담보도 없는 외국 농산물을 먹을 수 밖에 없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은 또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그리고 막대한 양의 국내 부족분을 외국농산물로 대체함으로 해서 생기는 국부유출은 어떻게 만회할 것인가? 이에 대해 명확한 대안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비싼 농자재, 높은 인건비, 밀려오는 외국 농산물, 불안정한 농산물가격, 판로도 불안한 어려운 상황에서 이제, 그나마 돈 걱정없이 사용해 왔던 벼종자 값, 딸기모 값, 온실 설치 기술비, 교육컨설팅비까지 다 내야 된다고? 아예 죽어라고 하시지!”
350만명이 내지를 이런 분노의 목소리를 듣고도 결행할 수 있는 명쾌한 방안을 내 놓을 수 있다면 차기 정부는 복안을 제시하고 농진청을 폐지할 테면 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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