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내놓은 정부조직법 개편안에 대해 이해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우선 통일부와 정보통신부, 여성가족부, 해양수산부의 폐지에 대해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어 국회의 법안 심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영어 교육 정책에서 보듯이 인수위에서 내놓는 정책이란 것이 선무당 사람 잡는 식으로 졸속과 즉흥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벌써부터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농촌포기, 농업철폐를 극명하게 보여주는데 그러나 정부조직법 개편안 가운데 국정홍보처와 농촌진흥청의 폐지에 대해서는 해당 부처 공무원들이 반발하고 있을 뿐, 별다른 여론의 움직임이 뒤따르지 않고 있는 듯하다. 국정홍보처는 기자실 통폐합 등으로 언론과 사이가 틀어져 그렇다 치더라도 농촌진흥청 폐지에 대해 언론이 침묵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농민단체들과 유관 학회에서 반대 성명을 내고 반대집회를 해도 언론과 시민들은 못 본 척 외면하고 있다.
짐작컨대 농업은 이제 돈 안 되는 사양산업으로 낙인찍힌 데다가 값싼 외국 농산물 수입은 당연하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된 탓일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를 비롯한 정치인들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위해 농업진흥책과 농촌살리기를 공염불처럼 되뇔 따름이다. 그들에게는 3백50만 농민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소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인수위는 ‘농촌진흥청’이라는 공식 명칭조차 ‘농업진흥청’이라고 틀리게 발표하는 무신경과 무책임을 드러내었다.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감축 대상 공무원 6,951명 가운데 농림수산 분야의 연구직이 44.4%라고 한다. 이중에서 농촌진흥청 소속이 30.3%라고 하니 전체 공무원 가운데 3분의 1을 농업 분야에서 줄이겠다는 뜻이다. 농촌포기, 농업철폐를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어디 있겠는가.
여론은 무심하지만, 주춧돌 뽑아내는 짓 인수위의 구상은 농촌진흥청을 정부출연연구소로 만들어 계속 존립시키겠다는 것이지만 곡물과 축산물 종자 개량과 연구를 상업적인 연구기관에 맡길 경우 국민 전체의 공공적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연구비 제공 업체나 기관이 주문하는 연구만 하고 그들의 구미에 맞는 연구결과만 내놓을 것이 뻔하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농업 분야의 연구기관을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은 농업 분야의 시장개방을 하면 할수록 농업기술의 공공성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장기적인 식량안보를 위해 필수적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국민은 농촌진흥청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그것이 꼭 있어야 한다는 절실한 느낌도 없을 것이다. 농촌진흥청이 없어진다고 당장 농산물 값이 오르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나 농촌진흥청을 없앤다는 것은 일제가 광화문을 헐어버린 것처럼 농경민족인 우리의 역사와 문화의 기둥을 허물고 주춧돌을 뽑아내는 것과 다름없는 야만적인 파괴행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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