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식량/식량안보 대응

밀·옥수수 등 곡물값이 왜 급등하고 있나요? (유한욱)

곳간지기1 2008. 4. 18. 10:52
밀·옥수수 등 곡물값이 왜 급등하고 있나요?

유한욱 · KDI 연구위원 
 
- 세계은행 '식량 뉴딜' 나선다
- "곡물 값 올라 빈국 1억명 굶주릴 위기"


전 세계에서 식량 가격이 급속히 상승하면서, 가난한 나라의 국민 1억 명이 추가로 더욱 비참한 빈곤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고 세계은행이 13일 경고했다. (중략) 이에 앞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11일 세계 지도자들이 빈곤국가들에 대한 식료품 가격 인하 대책을 취하지 않으면 개발도상국가에서 식량으로 인한 폭동이 확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FAO는 이미 아프리카 몇몇 국가들과
인도네시아·필리핀·아이티 등에서 식량으로 인한 폭동이 일어났으며, 세계 37개 국가가 식량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밝혔다(기사 중 일부 발췌).

지난해에는 밀, 옥수수 등 국제곡물 가격이 올랐다는 뉴스를 많이 접하셨죠? 먼 나라 얘기인 것 같지만, 이 때문에 여러분들이 간식으로 즐겨 먹는 라면의 가격도 100원이나 올랐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쌀값까지 뛰고 있다고 합니다. 쌀을 주식(主食)으로 하는 일부 개발도상국가에서는 식료품 값 폭등에 항의하는 폭동이 일어나고, 군인들이 쌀 공급을 감독하는 지경에 처해 있다고 하네요. 오늘은 폭동으로까지 이어지는 식량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왜 발생하는지, 또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은 어떤 게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곡물 가격은 왜 갑자기 변하나요?

곡물과 원유의 가격은 급변하기 쉽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곡물과 원유는 특정 나라들을 중심으로 생산된답니다. 원유는 몇몇 산유국에서 집중 생산되고, 대표적 식량자원인 쌀은 베트남, 중국 등 경작여건이 좋은 나라들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되지요.

특히 곡물은 기후조건이 변함에 따라 예기치 않게 생산량이 급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확기간이 길어 단기간에 공급량을 늘리거나 줄이기 어렵지요. 경제학 용어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현상(초과수요 및 초과공급)'이 발생하기 쉬운 품목입니다. 초과수요나 초과공급이 일어나면 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락할 우려도 그만큼 커지겠죠.

이와 같은 공급측면의 원인 이외에, 최근에는 수요 측 요인들도 곡물 가격 급등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중국을 중심으로 육류(肉類) 소비가 증가해 동물 사료용 곡물 수요가 급증한 것도 곡물가격 급등의 원인입니다. 각국이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함에 따라 대체에너지의 원료가 되는 옥수수의 초과수요 현상도 심화되었죠.

한편 경제주체들의 이기적인 행동들로 인해 상황이 보다 악화될 수도 있답니다. 쌀값 급등은 중국, 호주 등의 쌀 수확량이 가뭄으로 인해 크게 줄었고, 이에 더해 주요 쌀 생산국들(중국·베트남·인도 등)이 외국에 쌀 수출을 중지함으로써 촉발됐다고 하네요. 게다가 쌀값이 계속 상승할 거라는 기대감이 형성되어 농부들은 수확시기를 늦추는 한편, 중간 거래상들은 '사재기'로 쌀값 급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합니다.

곡물가격 급등 → 인플레이션 심화

곡물 및 원유 가격이 급격하게 변하면 단순히 쌀값이나 기름값만 영향받는 게 아닙니다. 이들 재화(財貨)는 다양한 식료품 혹은 화학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원료로도 사용되지요.

사람들이 즐겨 먹는 삼겹살을 제공하는 돼지를 키우기 위해 곡물 사료가 필요하고,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공장을 가동시키기 위해 석유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따라서 곡물 및 원유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 필연적으로 전체적인 물가 또한 크게 상승하게 됩니다. 전체적인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상승)이 심화될 수 있는 것이죠.

식량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굶고 살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마땅히 식량을 대체할 식품이 부족한 일부 개도국에서는 '쌀 폭동'까지 발생하게 됩니다. 요즘 '식량무기' 혹은 '자원전쟁'이라는 다소 거친 단어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유도 식량 및 자원가격의 급격한 변화가 매우 심각한 파급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랍니다.

식량가격 급변, 막을 수 없나요?

위기는 막는 게 좋겠죠. 먼저 국가적 차원에서 적절한 식량 비축량을 확보해 활용해야 한답니다. 예를 들면 홍수나 태풍으로 인해 흉년이 드는 경우 정부가 비축해놓은 농작물을 유통시켜 가격 급등을 막고, 기대하지 않은 풍년이 들 때에는 농작물의 초과공급량을 정부가 대신 사들여 가격 폭락을 예방할 수 있겠죠.

보다 근본적으로는 과학기술 개발을 통해 기후변화를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하여 생산량 급변에 적절히 대비하는 게 중요하겠죠. 또 수출중지나 사재기 등 각종 '비(非)시장적 행위'를 적절히 규제해 성숙한 시장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꼭 필요합니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 식량위기를 대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서, 세계적인 차원에서 식량 수급을 조절하고 생산 및 공급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식량농업기구(FAO)가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쉽게배우는 경제 tip] 거미집 이론이란?

경제학에서는 농산물 가격의 폭락과 폭등이 반복되는 현상을 '거미집 이론(Cobweb Theorem)'으로 설명합니다. 농산물 수요량은 가격에 즉각 반응하는 데 반해, 공급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지요. 수확기간이 길어서 공급량을 제때 조절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올해 예기치 않은 풍년으로 수확량이 크게 늘었다고 해 볼까요. 가격 급락을 막기 위해서는 공급량을 줄여야 하는데 농산물의 경우 그게 어렵죠. 이미 다 키웠거나 수확한 농산물을 달리 처리할 방법이 없어 시장에 계속 유통시키기 때문입니다. 올해의 가격 급락은 농민들로 하여금 내년의 농산물 생산을 크게 축소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내년에는 공급량이 많이 부족해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커지게 되죠.

이와 같이 초과공급과 초과수요가 반복되면서 가격의 폭락과 폭등이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1934년 미국의 경제학자 레온티에프 등에 의해 정식화된 '거미집 이론'의 핵심입니다. 농산물의 가격과 산출량이 시차를 두고 움직여 나가는 과정을 수요·공급곡선 그래프로 표시하면 거미집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