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식량/식량안보 대응

밀값 폭등에 쌀국수. 라면 시대 오나 (연합뉴스)

곳간지기1 2008. 3. 6. 15:35
 밀값 폭등에 쌀국수. 라면 시대 오나

정부가 쌀의 활용도와 소비를 늘려 최근 값이 뛰고 있는 밀의 수요를 잡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60~70년대 '혼.분식 장려운동' 이후 30년만에 쌀과 밀의 수급상황과 정책이 완전히 반대로 바뀐 셈이다.
그러나 쌀의 '밀 대체'를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과 가공상 어려움 등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는 지적이다.
 
◇ 대통령 "우리만 왜 밀가루 국수 먹나"

 4일 농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는 서민생활 부담 경감 대책의 하나로 면(국수.라면) 등 쌀로 만든 가공식품을 개발, 보급함으로써 밀 등 곡물가격 강세로 값이 크게 오른 품목을 대체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지난 1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이 농어업단체 대표 간담회에서 "쌀농사를 지어 경쟁이 안된다고 하는데 일본도 (쌀로) 정종을 만든다. 우리도 비싼 밀가루를 쌀로 대용할 수 없는지 연구해야 한다. 동남아에서도 다 쌀국수를 먹는데 우리만 밀가루 국수를 먹느냐"고 말한 뒤 마련된 후속 대책으로 보인다. 
 밀은 거의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 국제 가격이 폭등해도 '울며 겨자먹기'로 수입을 계속해야하는 반면 쌀의 경우 자급이 가능한데다 의무수입물량(MMA)을 통해 원치않는 수입까지 이뤄져 공급 여력이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연간 우리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 2003년 83.2㎏ ▲ 2004년 82.0㎏ ▲ 2005년 80.7㎏ ▲ 2006년 78.8㎏ ▲ 2007년 76.9㎏ 등으로 해마다 줄고 있고, 2006년 기준 자급률은 99.4%에 이른다. 이에 비해 자급률이 0.2%에 불과한 밀의 경우 지난해 단가 상승으로 수입액이 1년사이 28%나 급증했다.

◇ 우선 수입쌀 국수용 활용
 
정부는 첫번째 단계로 현재 한 해 22만t 정도 들어오는 가공용 의무수입(MMA) 쌀을 국수 등 가공식품용으로 사용토록 적극 유도할 방침이다. 현재 밥쌀용이 아닌 가공용 쌀의 대부분은 주정(술원료)용으로 공급되고 있으나, 곡물 수급 차원에서 보다 생산적 쓰임새를 찾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정부는 현재 40㎏당 2만6천원 수준인 가공용 쌀 공급가를 더 낮추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현재 같은 중량의 수입 밀가루 값이 4만원에 이르는만큼 수입쌀을 활용한 국수 등의 가격 경쟁력은 어느 정도 확보된 상태다.
수입쌀 국수 등에 대한 시장의 호응이 좋으면 정부는 다음 단계로 국산 쌀을 이용한 고급 식품 개발과 보급을 늘려갈 계획이다. 그러나 이 경우 수입밀에 비해 월등히 높은 국산쌀 값을 반영하고도 팔릴만큼 품질을 갖추느냐가 성패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현재 국내 국수시장에 사용되는 곡물은 11만6천t인데, 이 가운데 6천t만 쌀이고 나머지는 모두 밀"이라며 "쌀 국수 시장이 확대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 100% 쌀국수 개발..쌀라면도 연구

 기술적 차원에서는 현재 100% 쌀로만 만든 국수 생산이 가능한 단계다.
한국식품연구원 박종대 박사팀은 지난 1월말 밀가루를 첨가하지 않고도 100% 국내산 쌀만 사용하는 국수 생산기술을 발표한 바 있다. 여러 기능성 소재들을 첨가한 호박.클로렐라.흑미.녹차 등 7종류의 쌀국수도 함께 공개됐다.
쌀 면은 특성상 밀가루 면에 비해 찰기가 없고 표면이 매끄럽지 못해 면발이 잘 끊긴다. 때문에 그동안 국수에 소량을 섞는 정도로만 사용됐으나, 연구원이 면의 조직감을 훼손하지 않는 쌀가루 혼합비율과 성형기법을 찾아낸 것이다. 현재 연구원은 여러 중소기업들과 접촉하며 이 기술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판매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식품연구원은 밀가루면에 못지 않은 100% 쌀라면 개발도 검토하고 있다. 농수산식품부 산하 농림기술관리센터 역시 최근 연구 개발 과제로 수출을 염두에 두고 쌀라면.떡.죽 등 '쌀 가공제품 개발' 프로젝트를 공모한 바 있다.
식품연구원 박 박사는 "쌀국수 시장은 여전히 베트남이 주도하고 있으나, 기존 라면의 경우 우리나라의 인지도가 높은만큼 쌀라면 수출 시장은 무궁무진하다"며 "기름에 튀기거나 튀기지 않은 두 종류의 쌀라면 개발을 모두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 가격.맛 소비자 반응이 관건
 
그러나 이같은 쌀국수.라면 등에 무조건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우선 현재 한해 식용으로만 220만t이나 들어오는 수입 밀 시장에서 24만t의 수입 쌀이 과연 얼마나 대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지 미지수다.
활용 대상을 국산쌀로 확대한다면 높은 단가 때문에 타산을 맞추기 힘들어 '서민용' 국수나 라면 생산은 사실상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밀가루 가공식품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이 쌀 가공식품에 적응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지난 2001년부터 쌀 첨가(15% 비율) 라면을 생산하고 있는 삼양라면의 한 관계자는 "90년대초 쌀라면을 생산했으나 대체로 면발의 찰기가 떨어진다는 소비자들의 반응 때문에 생산을 중단한 적이 있다"며 "2001년부터 다시 쌀라면을 생산한 뒤 일부 매니아들에겐 사랑을 받고 있지만 전체 판매량은 여전히 적은 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현재 국산 쌀을 섞고 있는데, 쌀 비율을 높이면 당연히 가격 인상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