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전직 대통령의 불행한 사태에 한없이 안타까운 심정이다. 국민장을 치르면서 이 땅에 비극의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의 죽음에서 회개와 화해, 용서와 화합을 배우자는 반성과 자각운동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퇴임 후 처음으로 농촌의 고향마을로 내려가 손수 농사를 지으며, 존경스러운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좋은 전통으로 정착되기를 바랐는데... 너무 아쉽다. 그분의 많은 어록과 공과(功過)가 있지만, 대통령 당선초기에 표방한 공직자의 리더십에 대한 내용은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과제라 생각되어 소개한다.
□ 노무현 시대 공직자의 리더십 패러다임
- 하나의 조직에 리더가 존재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조직구성원들이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맡은 바 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보호자의 역할, 바람막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 대통령이, 장관이 공무원을 보호하지 않으면 공무원은 스스로를 보호한다. 공무원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은 땅에 납작 엎드려 꼼짝하지 않는 것, 이른바 ‘복지부동(伏地不動)’이다. 잘못되면 비난받을 것이 두려워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고 기계처럼 일을 처리하는 것, 이른바 ‘무사안일(無事安逸)’이다.
- 리더가 업무에 정통한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다른 어떤 인간적인 장점도 업무에 정통한 토대 위에서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조직의 카리스마는 업무파악 능력에서 나온다. 업무에 정통하지 않으면 행정리더로서의 영(令)이 서지 않는다. 정통하려면 읽고, 만나고, 물어야 한다.
- 직원과 장관, 직원 서로간을 잇는 커뮤니케이션의 길을 만들어 놓는 것은 리더의 가장 보람된 역할이다.
- "비전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비전이 없다면 민족뿐만 아니라 조직도, 개인도 제대로 활동할 수 없고 결국은 망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비전은 무엇인가? 비전은 꿈은 꿈이되, 절실함이 배어있는 것이다. 진실하고 간절한 꿈이 비전이다. 이것은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 위에서만 가능하다. ‘어떻게’라는 질문보다는 ‘왜’라는 질문을 깊이 던질 수 있어야 비전을 가진 인물, 비전을 가진 조직, 비전 있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 존재 이유와 꿈 그리고 비전을 나는 업무보고에서뿐만 아니라 직원과의 대화에서도 강조했다. "10년 후 여러분과 조직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소망을 품으십시오. 그 소망을 붙잡고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십시오."
- 관리자는 오늘을 이야기하지만 리더는 미래를 보고 오늘을 이야기하자고 한다.
- 직원들과 대화나 토론을 하면서 내가 제일 많이 했던 말 중의 하나는 "현장에 가보라"는 것이었다. "현장에 가면 다 있다. 문제점도 거기에 있고, 해결책도 거기에 있다. 만나야 할 사람도, 알아야 할 사실도 그곳에 가면 다 있다. 현실을 모르는데 어떻게 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정책의 시작은 현장을 확인하는데 있다."
- 전략적 사고는 한마디로 일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일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인을 파악했다면 일이 해결될 때까지 이 문제에 자신의 노력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략적 사고는 우선 실현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다음 성패를 결정하는 요인을 파악한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일의 선후와 경중을 분명히 하면서 단계별 과정을 짜고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과정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저항과 장애에 대한 극복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든 단계에 걸쳐서 목표와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다.
- 실 국의 업무보고와 개별 사안에 대한 결재를 하면서 내가 가장 아쉬웠던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미래에 대한 비전과 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유독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무원들이 고민을 적게 하는 것 같았다.
-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동력은 무엇일까.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장관의 스타일을 꼽는 분도 있고, 세세한 부분까지 검토하고 챙기는 담당 공무원의 능력을 말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정책에 대한 담당 공무원의 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일은 반드시 해야 하고, 또 그렇게 되리라 확신하는 담당자의 자세야말로 엄청난 적극성과 추진력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 ‘공무원들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뭐. 도대체 아는 게 있어야지’ 이런 생각을 가진 국민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다른 모든 것을 접어두고라도 그들은 수십 대 일, 많게는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으로 채용된 사람들이다. 만약 그런 사람들이 진짜 무능하다면, 그것은 무능해졌다고 하는게 바른 표현이고, 그 책임은 그들의 역량을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떨어뜨린 정부 시스템의 탓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학습하고 탐구할 수 있도록 기회와 유인을 제공하지는 않으면서 열악한 근무여건 속에서 사명감 하나로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을 비난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칭찬은 아끼지 않고, 사기는 꺾지 않는다. ‘부하에게 공을 돌리라’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자기 것인양 과시하지 말고 원래 그 사람의 공임을 인정해 주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사정의 칼바람으로 공무원들의 사기를 죽이기보다는 부정하지 않아도 사회적 품위를 유지하며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대우가 좀 모자라도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형성해 가는 것이 우선적인 정책방향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 조직운영이든 정책결정이든 간에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떤 사람을 쓰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는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나는 인사가 지극히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만사라고 하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 따라, 혹은 잘하겠다는 의욕을 갖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동일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발휘하는 역량은 현저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을 어디 배치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성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조직 분위기를 만드는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기보다 조직 전체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노력들이 앞으로는 더 필요할 것이다. 부연하지만 나는 사람을 어디에 배치하는가보다 조직 전체가 잠재된 역량까지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느냐에 더 큰 비중을 두는 편이다.
- 나는 공직사회가 각자의 업무영역에서 전문성을 발휘함은 물론 조직 전체의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는 가운데 생각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원(課員)이 되지 말고 부원(部員)이 되어야 한다. 자기 일에만 매이지 말고 조직 차원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 추진방향도 잡아야 한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조직 성원 모두가 함께 대응해야 한다.
- ‘지식경영’이란 조직 내외에 산만하게 표류하는 정보나 지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조직의 발전전략에 직결되는 핵심지식을 부단히 창출하고 신속하게 전파 공유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원하는 지식을 적기에 습득하여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킴은 물론, 국민들에게 인터넷 등을 통하여 유용한 정보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 미래를 바라보며 각자의 역량을 키워가고,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막고 있었던 조직 내부의 장벽을 하나둘씩 허물어 가며, 함께 고민하고 힘을 모으고자 하는 ‘우리’라는 의식을 갖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정책 담당자들이 정책내용에 쏟는 정성만큼 홍보와 설득작업에도 열의를 보이는지는 의문이다. 남을 설득하려고 할 때는 자기가 먼저 감동하고, 자기를 설득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홍보 없이 사업을 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처녀에게 윙크하는 것과 같다. 당신 자신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만 남들은 몰라주는 것이다.
- 공무원이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국민들의 편익이다. 국민들의 환한 웃음, 국민들이 누리는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공무원의 존재이유이고 보람이기 때문이다.
- 공직자들이 밤늦도록 일해도 국민들이 정부 서비스 개선을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이다.
- 관료 조직 내에서 장관은 섬김을 받는 자리인가, 섬기는 자리인가? 지도자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의 종(servant)과 같다. 다시 말해 진정한 지도자란 따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 새로운 시대정신을 선도하는 평화와 공영의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역사적 사명이다.
-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새로운 질서를 세우자 -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신약성경 마태복음 20장 26~28절]
* 이 성경구절은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교훈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의 원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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