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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과학, 소통을 배우자! (금동화)

곳간지기1 2009. 10. 16. 14:59

한국의 과학, 소통을 배우자!


  얼마 전 주로 정보통신 기기를 개발하는 한 기업 임원에게서 기억에 되새길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에서 경력직 사원을 채용하면서 그 임원이 시간 관계상 홍보직과 기술직 지원자의 면접을 한자리에서 치렀다고 한다. 그런데 홍보 쪽 지원자는 본인의 경력에 문제가 되는 부분까지 잘 설명하는 반면, 개발업무 지원자는 본인이 잘 알고 있는 것조차 제대로 표현하지를 못해 비교가 되더라는 것이었다.


특히 그가 지적한 것은 기술직 경력자의 언어구사였다. 국ㆍ영문이 혼합된 전문용어를 마구 쓰고, 비문을 엄청나게 쓰는데다 여기저기 갖다 붙이는 엉뚱한 존칭, 젊은 세대다운 비속어 등 자신도 공대 출신이지만 이해하기 어렵고 듣기가 너무 민망했다고 한다. 필자도 평소 공감하는 바가 많은 부분이어서 앞으로 이공계 대학 과정에서 말하기와 듣기, 그리고 글쓰기의 과정을 크게 늘릴 필요가 있다는 말을 나누었다. 과학과 기술이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문용어를 당연시하거나 영어와 약자를 조심하지 않고 쓰는 오래된 관행이 과학을 대중에게 본래보다도 더욱 어려운 분야로 만들고 있다.

 

외국어 사용이 과다하다

  우리 주변의 이공계 출신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터뷰나 칼럼 등 대중적인 소통에 능통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기술자란 모름지기 세상 돌아가는 일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연구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만은 아니다. 과학과 기술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일반인을 이해시킬 대중적 표현에 대한 훈련이 미흡해 자신이 없다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과학과 기술을 설명하는 글이나 기사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생경한 전문용어가 걸러지지 않은 채 쓰이는 사례가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전문용어를 원어로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고 더 늘고 있다. 이런 데에는 원어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의미 전달이 잘 안되거나 원래의 의미가 훼손되기 때문에 전문용어나 원어를 거르지 않고 쓰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적합한 우리말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대중에게 어려운 과학을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더 나쁜 것은 원어를 쓰는 것이 더 지적으로 보이고 근사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습성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과 기술 분야만 그럴까? 물론 아니다. ‘화이트 썸머 수퍼 세일 페스티발’, 모처럼 들른 백화점의 엘리베이터에 큼지막하게 붙은 광고전단의 문구이다. 물론 금세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쉽게 이해할까? 그리고 꼭 이렇게 외국어로 써야 하는가? 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필자뿐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것 말고도 우리 주변에는 외국어 남발이 도처에 넘쳐흐른다. 일상 대화와 방송에서도 아직 우리말화 되지 않은 외국어의 사용이 지나치다. 샤르빌, 하이츠, 타워 팰리스, 캐슬 등은 아파트 이름이고, 뜰 혹은 정원을 뜻해야 할 ‘가든’은 실은 불고기집이고, 이탈리아 혹은 프랑스 음식점이 아니라도 노모니아, 자르디아니 등과 같은 생경한 간판은 강남 어느 골목에서나 볼 수 있는 음식점의 상호이다. BK(Brain Korea)21, WCU(World Class University)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하는 핵심 사업인데, 각각 ‘한국두뇌21사업’ 및 ‘국제수준대학육성사업’ 대신에 알파벳 약자로 쓰이고 있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필수과목으로

우리나라는 이미 지식기반경제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것은 지적재산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물적재산보다 더 높은 나라가 되었다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과학과 기술적 요소(총요소생산성)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노동과 자본 투입 요소를 합친 것보다 높은 선진국 패턴에 접어들었다는 의미이다. 바꾸어 말하면, 지식을 기반으로 국가 발전을 추구해야 하는 우리 상황에서 온 국민이 과학과 기술에 대해 적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소양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생산직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만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더라도 컴퓨터 기기의 새로운 기능과 그 속에 숨어있는 신기술에 익숙해야 한다. 새로운 소프트웨어와 장치에 익숙할수록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고 부가가치가 더 높은 고수익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적 소양을 정규 학교 교육에서 올바르게, 그리고 충분히 습득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일상생활에서 모든 국민이 각종 매체와 재교육 방법 및 제도를 통해 새로운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 시점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중요성과 역할이 생긴다. 좀 더 쉽고 빠르게 과학지식을 받아들이도록, 과학기술계가 먼저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정보를 제공하고 의사소통이 되도록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말과 글을 통하여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의사소통 하는 소양도 언어와 수학처럼 필수과목이 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익히고 지식하여 습득해야 할 일이다. 최근에 이공계 대학에서도 과학과 기술문서 작성법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교수의 논문 업적이 중요해진 탓으로 생긴 변화이기에, 대학원 학생들에게 과학논문 작성 기법을 강조하고 가르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교 과정에서도 이공계 학생들에게 과학과 커뮤니케이션, 과학적 주제로 말하기와 글쓰기 등이 문학부에서처럼 필수과목이 되어야 할 시점이다.


과학기술계가 먼저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우리는 흔히 의사소통이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하고 듣는다. 의사소통이 부족한 원인은 대체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애당초 의사소통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것, 둘째, 의사소통의 방법이 틀렸거나 좋지 않은 것이다. 과학기술계에서도 과학과 기술적 내용을 잘 잔파해야 한다는 합의는 이루어져 있다. 몇 가지만 고쳐지면 과학과 기술적 내용에 대해 의사소통할 수 있다.

첫째, 먼저 핵심을 요약해서 이야기하고 풀어서 주석을 단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핸드폰의 핵심기술 ‘CDMA’는 외래어로 정착된 표현이나, ‘다중코드분할방식’이라고 한번은 주석을 달아 서술하는 편이 나은 방법이다. 흔히 환경친화적이라는 의미에서 ‘그린’이라는 말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녹색’이라는 말이 의미전달에 부족하지 않으며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둘째, 문장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비문을 조심하고, 영어식 문장을 직역하여 쓰지 않는 것이다. 우리말은 서술식이 자연스럽다. 형용구나 피동문이 남발되는 영어식 표현을 피하는 것이 좋다. 라디오를 통해 흔히 듣는 “원활한 교통흐름을 보인다” 보다 “차량 흐름이 원활하다”가 낫다.


셋째, 같거나 비슷한 단어를 반복해서 쓰는 것을 피한다. 한 문장에 여러 의미를 담거나 혹은 상세하게 설명하려다 보니, 비슷한 얘기를 중언부언 식으로 덧칠하는 습관이 생긴 경우가 있다. 이러한 습관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더 단순하면서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최근 연구재단이 출범하면서 “PM 중심의 연구지원 관리체계로 전환하여, 연구지원 관리업무의 전문성을 제고합니다”라고 천명한 바 있다. 이를 “전문위원 중심으로 연구지원 관리업무의 전문성을 제고합니다”로 고친 문장은 본래 의미를 잃지 않으면서 훨씬 단순하다.


20세기 마지막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귄터 블로벨 박사는 “과학과 일반 대중의 거리가 멀어지게 되면 사람들은 과학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고 말했다. 때문에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일찍부터 일반대중과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 부족은 과학기술계 전반에 대한 지원과 지지 기반을 약하게 만들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이공계 기피 같은 문제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과학은 연구자들의 전문분야이기에 앞서 일반 대중들의 생활이자 문화가 되어야 한다. 좀 더 쉽게, 좀 더 효과적으로 대중과 호흡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 필자 : 금동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 dwkim@kist.re.kr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 졸업 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재료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기획관리단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부원장, 한국전자현미경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