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식량/농촌진흥청 소식

[삶터에서] 농촌진흥청 폐지는 ‘시대역행’ (이강운)

곳간지기1 2008. 2. 18. 10:17

[삶터에서] 농촌진흥청 폐지는 ‘시대역행’

  경향신문> 오피니언> 2008년 02월 17일 18:36

  

 요즘 농촌은 매우 바쁩니다. 새해 영농 설계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삼삼오오 모여서 올해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지 의논도 합니다. 더욱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마음 바쁜 연초에 동네가 시끌벅적했습니다. 태안의 기름때를 벗기러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개인 돈 3만원씩 내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기름을 닦아내야 한다며 등 굽은 노인들이 꼭두새벽부터 버스에 올랐습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기름투성이 바다를 보는 심정이나, 문전옥답을 아무것도 경작할 수 없는 땅으로 놔두어야 하는 심정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많은 농어민을 시름 젖게 하는 것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입니다. 그러나 중국과의 FTA를 생각하면 공포 그 자체입니다. 우리나라 바로 옆에 있어 물류비도 적게 들고 대부분 품목이 겹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적으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결국은 우리 농민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혼자 힘으로 되지 않으니 정보도 얻고 미래 예측도 해줄 수 있는 조력자가 절실히 필요할 때입니다.


농민에 없어서 안 될 연구사들,

동네 이장을 3년 했습니다. 환경 친화적이고 모두가 오고 싶어 하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농촌진흥청 연구사들에게 많은 자문을 받았습니다. 많은 경험과 지혜를 지닌 그들이야말로 우리 농민들과 정서적으로 가장 가깝고 큰 힘을 보태줄 멘토라고 생각합니다.


‘농촌진흥청의 정부출연연구소 전환.’ 정확한 뜻은 잘 모르지만 ‘더 이상 나랏돈으로 농업 연구를 지원할 수 없으니 너희 연구비는 너희가 알아서 챙기라’는 메시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구소로 전환한 후 더 많은 예산 편성을 통해 연구 분위기를 올린다고 하지만 ‘근거 없는 낙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농업 강국이 되는 길은 연구비 총액 증가가 아니라 창의적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일 것입니다. 농업은 이상기후, 신규 병충해 발생 등 예측불허의 돌발적 문제로 인해 식량 공급에 차질이 생겨 국가재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사전 방지 및 발생시 즉각 해결을 위해서는 안정된 연구 기반 위에서 평소 이에 대한 대비책 강구를 위한 연구를 장기적, 조직적으로 꾸준하게 지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1초를 줄이기 위해 10년을 뛰어야 하는 100m 달리기 선수처럼 농업은 쉽게 보이지도 않고, 보이는 것조차도 단조로운 큰 소용없는 반복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1초엔 억만 겁의 시간과 땀이 들어있으며 보이지 않는 그 결과에 ‘지속가능한 농업’ ‘환경과 조화로운 농업’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농업은 단순한 1차 산업이 아닌 생명공학, 바이오에너지 등 생명산업의 가장 핵심 과학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에 힘을 더해 큰 틀을 짜야 하는데 꾸준히 성과를 보이던 탄탄한 구조를 바꾼다니 거꾸로 가려고 하는 일입니다.


옛날에는 어떤 경로든 시골과 연계돼 농업과 관계있는 이슈가 도시민들에게도 관심사였지만 이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으로 예민해져 있는 농민들에게는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이 없습니다. 삶터를 지켜내기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농민들의 짐을 함께 들어주며 뒤를 든든하게 받쳐 줄 후원자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말입니다.


FTA 앞두고 엎친 데 덮친 격,

짧은 기간에 몇몇이 모여 결정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중요한 사안입니다. 꼭 전환해야겠다면 공무원 신분을 버려야 할 공무원들이 아닌 만년대계의 농업과 농촌과 암담한 미래와 처절하게 싸워야 할 농민들을 위한 일인지를 전문가 그룹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열어서 충분히 토의를 해 주십시오.

한 달을 생각해 만년을 쉽게 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이강운 / 홀로세생태보존硏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