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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옹지마 [하늘목장]
국어에서는 새가 운다라고 표현하지만.. 영어에서는 새가 노래한다고 말한다.
똑같은 현상을 보고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관점의 차이가 작용하는 것 같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예배에 빠지지 않고, 주일을 범하지 않는 것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관점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관점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은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을 평지로 바꾸기는 힘들지만, 산을 평지로 바라보는 시각을 소유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렇게.. 믿음의 관점을 소유한 사람은 동굴에서도 노래할 수 있으며..
좁은 길을 걸어도, 밤낮 기뻐하는 삶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고, 예배를 열심히 드린다 해도, 관점이 바뀌지 않으면..
새가 운다고 생각하여, 늘 패배주의와 무기력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똑같은 새를 가지고 노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다.
이런 믿음의 소유자는.. 당장 눈앞에 일어나는 절망적인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
언제나 새옹지마의 관점으로, 우는 새를 놓고도 새가 노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시야를 확보하고..
관점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당장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앞에서나.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앞에서나,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바울을 보시라.
아무리.. 우리가 어렵고 힘들다 하여도, 바울만한 사람이 있을까?
몸은 병들어 아프고, 날마다 개처럼 매맞고, 강도의 위험과 먹지 못함과, 온갖 핍박과 헐벗음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이뿐인가?
바울을 죽이기 전까지는 음식을 전폐하겠다고 결의하고, 바울을 쫒는 사람들이 40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바울처럼... 감옥에서도, 큰 소리로 노래한 사람이 또 있을까?
다윗은 왕이 되어서도 궁궐에 있지 못하고, 매일 사울왕의 칼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세였다.
우리에게 고난이 많다 한들, 자식에게 배신을 당하고.. 왕에게, 쫒김을 당하는 자가 있을까?
그러나 다윗은 날마다 찬송하는 자로 살았다.
그 이유는 다윗 내면에 있는, 관점의 변화 때문이었다.
결국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정녕 나를 따른다는 새옹지마적 관점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는..
원시안적 시야가, 바울과 다윗의 울음을.. 노래로 바꿀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러므로 근시안적 시야를 가지고, 일희일비하지 말고..
남이 볼 수 없는..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소유함으로..
지금 당장.. 어렵고, 죽을 정도로 막막할지라도..
새옹지마적 믿음과 관점을, 회복함이 절실한 때이다.
어차피, 세상 것들이나 사람으로는..
넓은 길을 걸으며, 우는 자로 살 수 밖에는 없게 마련이지만..
그리스도의 관점과, 시야를 잉태함으로..
좁은 길을 걷더라도.. 밤낮 노래하는 삶이 명품 믿음이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신령한 복 아닐까?
지구상의 인구 중에, 매일 밤..
30억명이, 굶주린 채 잠자리에 들며..
40억 인구가.. 절망을 품은 채,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그러니 배부르게 잠을 청하며, 절망하지 않은 채로 잠자리에 누울 수 있다면..
춤추며 노래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 아닐까?
비록..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그러므로, 새옹지마의 관점을 소유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말도 안되는 고난과 어려움이.. 혹시, 새옹지마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팁]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유래
세상만사가 변전무상(變轉無常)하므로,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예측할 수 없다는 뜻.
세상 길흉화복의 덧없음을 비유한다.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要塞) 근처에 점을 잘치는 한 노옹(老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노옹의 말[馬]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른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치하하자 노옹은 조금도 기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가 될른지."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옹의 아들이 그 오랑캐의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른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랑캐가 대거 침입해 오자 마을 장정들은 이를 맞아 싸우다가 모두 전사했다.
그러나 노옹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무사했다고 한다.
[출전]《淮南子》의〈人生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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