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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입맛을 따라잡자 (임정빈)

곳간지기1 2008. 3. 26. 08:33

소비자 입맛을 따라잡자

 임정빈 (서울대교수) / <농민신문> 2008. 3. 12.  

 

  얼마 전 일본 도쿄 인근 농촌지역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출장 일정이 매우 빡빡해 점심 식사를 주로 국도나 고속도로변 휴게소에서 하게 됐다.

 

국도나 고속도로 휴게소 주변에 농산물 판매장이 있는 것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판매장 벽면 한곳에 고유번호가 있는 소박한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이었다. 이들은 판매장에 진열된 농산물을 공급하는 지역 농민들이었다. 이는 이곳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판매전략이라 여겨진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양념용 일반양파와 샐러드용 양파 두종류를 같은 판매대에 나란히 진열·판매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샐러드용 양파는 식품의 특성을 고려해 샐러드의 맛을 내기에 적합하도록 개발된 품종으로, 일반양파에 비해 맵지 않다는 것이다. 식품의 특성과 소비자의 입맛까지 고려해 원료 농산물을 용도별로 생산·판매하고 있는 세심한 배려다.

 

이번 출장에 동행한 원예학 전공 동료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이렇듯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쌀을 포함해 양파·시금치·고구마·콩 등의 농산물에 대해 측정 가능한 식미(食味)지표를 개발하고, 용도별로 소비자의 입맛에 최적화할 수 있는 식재료로 적합한 품종 생산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출장 후에 알아본 결과 우리나라도 쌀 성분 분석을 통해 밥맛을 좌우하는 성분의 함량을 측정해, 김밥용(만미)이나 떡볶이용(고아미)에 가장 적절한 쌀 품종과 찹쌀떡용(눈보라) 벼가 개발된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김밥용·떡볶이용·찹쌀떡용 쌀 외에 우리의 전통 대표음식의 하나인 비빔밥용이나 주정용을 포함한 가공용 쌀 등의 개발 보급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특히 채소나 과일 등의 경우에는 색상·당도 등 품질 등급은 많이 개발돼 적용되고 있으나, 이를 식재료로 하는 식품에 대한 식미기준이나 각종 용도에 적합한 품종 등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튼 수입 농산물과의 경쟁을 위해서는 고품질을 통한 차별화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외국산과 국내산 농산물 간 차별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일반적 의미의 차별화 전략 외에도 일본처럼 다양한 품목에 걸쳐 식품, 소비자의 입맛, 식문화까지도 고려한 품질 차별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농업·농정은 소비자의 관심사항을 고려하는 데 부족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고품질 농산물 생산 확대와 함께 소비자들의 식미를 최대로 높일 수 있는 ‘용도별 농산물공급체제’ 구축에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국민소득 증가에 따라 소비자들은 보다 다양하고 고급화된 농산물을 찾을 것이고, 이에 부응하는 소비자 지향적 농산물 공급체제 구축 노력은 국내산 농산물에 대한 신뢰 제고와 함께 새로운 수요 창출에 기여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제는 쌀을 포함한 모든 산물에 대해 식미 지표를 개발하고, 최적의 식미를 주는 품종 개발과 보급, 그리고 이를 활용한 효과적인 마케팅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