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은 1794년 1월 착공하여 1796년 9월에 완공된 읍성이다.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을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화산 아래에 있던
관청과 민가를 팔달산 아래로 이전시키고 이곳에 화성행궁과 화성을 축성하였다.
화성은 동서양의 군사시설 이론이 잘 반영되고 방어기능이 뛰어나 '성곽의 꽃'이라 불린다.
또한 축성에 관한 모든 기록을 '화성성역의궤'에 남겨 이 책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수원화성박물관은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찾는 방문객에게 정조시대의
문화와 더불어 화성의 우수성을 심도있게 알려주는 '전문박물관'이다.
전시공간은 축성과정을 알려주는 화성축성실, 화성의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는 화성문화실,
수원화성과 관련된 야외 전시공간 등 크게 세 곳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울러 어린이체험실과 영상강의실, 교육실 등 교육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몇년전 화성행궁을 복원하면서 같이 지은 수원화성박물관 (마당에 거중기 모형)
거중기는 지금의 기중기와 같은 기계인데, 실학자 정약용이 궁리끝에 고안하여
수원화성 축성 시 무거운 돌을 들어올릴 때 사용했던 도구이다.
정조시대 개혁정치의 기반도시 수원, 유형원의 '반계수록'에 서울의 관문인 이 지역에
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축성한다면 서울을 방비하는 대도회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전체 모형도
정조의 부친인 사도세자 능이 있는 융건능을 묘에서 원으로 승격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갑옷을 입은 정조의 화성행차
세계의 주요 성곽 중 잘 보존된 '성곽의 꽃' 수원화성
화성행궁 모형도
수원화성을 축성하던 모습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발명한 거중기 등을 이용한 축성과정
거중기를 이용해 적은 힘으로 큰 바윗돌을 운반하고 있다.
축성을 위해 벽돌을 만들던 과정
원근 각처에서 목재를 조달해온 과정
정조는 농업기술의 혁신을 위해 국영농장인 둔전을 설치하고 병농정책을 펼쳤다.
농촌진흥청 구내에 있는 '서호'는 둔전에 농업용수를 조달하기 위한 인공호수다.
서둔(西屯)동, '수원성곽 서쪽에 위치한 둔전'이라는 뜻으로 유서깊은 곳이다.
거창하게 펼쳐졌던 '수원화성 낙성식'(1796년 10월 16일) 궁중연회 장면
수원화성 당시에 그려졌던 그림들
조선왕실 최대의 사건, 임금의 화성행차를 위한 한강의 배다리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 앞에서 쌀과 소금 등 구휼품을 나눠주고 있다.
정조는 개혁정치를 통해 왕권의 권위를 강화하면서도 친서민정책을 펼쳤다.
화성행궁에서 열린 혜경궁홍씨의 회갑연
화성의 각루에서 성을 지키던 병사들
성내에 있던 시장
정조가 영의정인 채제공에게 내린 교지
힘없는 백성들을 위한 힘 - 진정한 왕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인증서
수원화성을 축성할 때 큰 돌을 들어올리는데 사용했던 도구(활차녹로)
* 위치 :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49번지, 화성행궁 앞(전화 031-228-4205)
* 관람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입장은 5시까지),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입장료 : 어른 2,000원(단체 1,000), 청소년 및 군인 1,000원(단체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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