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위기, 쌀 경쟁력 절실
GSnJ 연구위원 임정빈(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2008. 5. 9 조선일보
쌀 국제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작년까지 국제 시장에서 t당 330달러에 거래됐던 국제 쌀 가격이 이미 1000달러로 3배 가량 올랐다. 특히 최근 1개월 사이에만 2배나 폭등하였다. 국제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온 밀·옥수수·콩에 이어 쌀마저도 연일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제사회는, 곡물가격 급등이 세계적 물가상승을 주도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국제 곡물가격은 앞으로도 고공행진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식량위기론까지 대두되고, 각국의 식량자원 확보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가시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지는 않지만 세계 5위권의 대규모 식량 수입국으로서 마냥 느긋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전체 식량 자급률은 27%에도 미치지 못하고, 그나마 현재 주곡인 쌀을 제외한 밀·옥수수·콩 등 다른 곡물의 자급률은 5% 수준이다. 따라서 곡물가격 상승이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하에 국제 식량부족 사태에 대응한 새로운 식량확보 전략을 수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
식량위기와 애그플레이션 현상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기초 식량인 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국제 곡물값 급등의 폭풍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게 한 효자상품이 바로 쌀인 것이다. 만일 쌀마저 높은 자급률을 유지하지 못했다면, 현재 빠르게 상승 중인 국내물가는 더 큰 폭으로 올랐을 것이고, 국민경제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늦어도 2014년 이후에는 쌀도 관세화로 개방될 것이며, 더욱이 조만간 DDA 농업협상과 함께 미국·EU·중국 등 주요국과의 FTA 체결이 예정되어 있어 쌀 시장의 개방 확대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따라서 당분간 지속될 애그플레이션 상황을 한국 쌀 농업의 체질 강화와 경쟁력 제고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선 생산성 향상 노력을 통해 국산 쌀의 가격경쟁력을 꾸준히 높여 나가야 한다.
또한 품질 좋고 안전한 쌀 생산체계를 구축하는 데 고삐를 늦추어서도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주곡인 쌀의 경쟁력은 소비자의 신뢰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국내산 쌀의 경우 종종 지역 및 품종에 차이가 나는 국산 쌀이 서로 혼합되어 판매됨으로써 균일한 품질관리가 되지 않아 소비자들의 신뢰 확보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가령 농촌진흥청이 2005년부터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고품질 쌀 생산체계 구축사업인 '탑 라이스' 프로젝트는 좋은 지침을 제공해 준다. 이 프로젝트는 참여하는 생산농가에 품질관리 매뉴얼을 보급하여 엄격히 품질검사 기준에 합격한 쌀만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 지역별로 적합한 단일품종 재배를 통해 품종 혼입을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균일화된 고품질 쌀을 생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소비자의 신뢰 속에 일반 쌀에 비해 높은 가격에 팔리면서 참여농가의 소득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 물론 전국적으로 소비자가 믿고 찾는 고품질 쌀 공급체계를 조기에 확산시키기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
또한 국제 곡물 값 폭등 상황을 새로운 쌀 수요 창출의 기회로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소비자 입맛에 맞는 쌀국수·쌀빵·쌀전통주 등 쌀 가공품 개발과 보급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러한 다양한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면 한국 쌀 농업은 국내 소비자의 든든한 신뢰와 국민의 애정 속에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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