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식량/우리 쌀 이야기

쌀 조기 관세화의 허와 실 (양승룡)

곳간지기1 2009. 5. 6. 08:48

2009년 4월 27일(월) 농민신문에 실린 GSnJ 연구위원 양승룡 고려대 교수의 글입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서 국내외 여건변화를 근거로 쌀 조기관세화가 국익에 유리하다는 논지로

2차례 공청회를 개최했고, 양교수를 포함해 참여한 토론자들도 대체로 당위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후 관세화에 찬성하는 의견만 한두차례 언론에 나왔고, 신중론이나 반대론은 아직 나오지 않은것 같다.

이런 시점에서 양교수가 쌀 조기관세화의 논리에 약간의 보완을 요하는 신중한 대처를 주장하고 있다.   

   

 "쌀 조기 관세화의 허와 실을 진단한다"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

 

  쌀 시장의 조기 관세화가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지난해 9월과 올해 2월 두차례에 걸친 공청회를 통해 쌀 조기관세화 전환의 이점을 제시했고, 농림수산식품부도 농어업선진화위원회 논의 과제로 채택해 공론화 과정을 시작했다.

 

쌀 조기 관세화의 이점은 대체로 명확하고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농민 단체를 위시한 학계나 정책당국 등도 폭넓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해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 정권의 존립마저 위협한 광우병 사태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광우병 사태가 미국산 쇠고기의 실질적인 위험을 넘어 국민을 무지렁이쯤으로 치부한 정부의 일방적이고 안이한 태도로부터 촉발되었음을 감안해 쌀 시장개방도 모든 비판적 가능성을 검토한 뒤 논리적 완결성을 추구하고, 이해당사자들을 충분히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조기 관세화를 주장하는 KREI는 최근 국제 쌀값과 환율이 급등해 관세화로 시장개방 하더라도 현행의 저율관세할당(TRQ) 물량 이외에는 추가로 수입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관세화 유예를 지속할 경우 매년 추가로 증량되는 TRQ 물량만큼 불필요한 재정적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이 비용은 향후 10년간 2,000억원에서 4,000억원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조기 관세화는 단순히 수입 비용으로 득실을 따지기에는 훨씬 복잡하고 중대한 문제다. 2004년 쌀 재협상 당시 관세화 유예를 선택한 이유는 그 효과가 관세화 개방에 비해 크기 때문이었다. 당시 여러 전문가들이 추정한 관세화와 동등한 의무수입 물량은 8% 내외였다. 이는 관세화 유예의 대가로 허용해야 하는 의무수입 물량을 8% 이하로 협상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향후 있을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의 불확실성과 정치적 부담을 고려하면 실질 동등성 수준이 10% 이상이었을 것이다. 협상 결과 2014년까지 7.96%까지 늘리는 것으로 합의됐다.

 

이제 국제시장 여건이 바뀌고 DDA의 윤곽이 드러나 동등성 수준이 거의 0%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관세화 여부를 판단하는데는 수입 비용 외에도 적지 않은 고려사항이 있다. 조기 관세화 주장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평균적인 분석에 의존한 것이다. KREI는 2008년 국제 가격에 환율과 관세, 제 비용을 적용한 외국산 공급가격 22만8,000원(80㎏ 기준)을 국내가격 15만5,000원과 비교해, 수입 가능성이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대형 마트에서 5%의 누적판매량을 차지하는 상위 브랜드들의 평균값은 무려 31만원이 넘는다. 이들의 평균 마진율 15.2%를 고려할 때 미국산 쌀은 국내 대형 마트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마케팅 능력을 고려하면 그 이상의 점유율도 가능해 보인다. 하물며 미국보다 생산비가 훨씬 낮은 중국산 쌀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조기 관세화가 한국의 개도국 지위에 미치는 영향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 관세화 유예는 개도국에만 적용되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부속서 5B에 의한 것으로, 관세화 유예를 포기할 경우 개도국 지위를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DDA 협상이 쌀 이외의 품목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심각할 것이다. 또 관세화가 향후 전개될 한·중 FTA에서 쌀 협상에 미칠 영향도 고려돼야 한다.

조그만 구멍이 둑을 무너뜨리고, 약간의 방심이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쌀 문제는 아무리 두드려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