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시니어·직장선교

양화진의 절두산 순교성지 성지순례

곳간지기1 2009. 8. 20. 18:23

서울의 마포나루 한강변의 양화진에 가면 조그만 동산 위에 '절두산 순교성지'가 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순교 사적지로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던 곳이다.

1967년 병인박해 100년을 맞아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기념성당과 박물관을 건립했다.

1984년에 한국천주교 200주년과 103위 순교자 시성식을 위해 요한 바오로 교황이 방문하였다.

 

구한말 쇄국정책으로 문을 걸어닫고 있을 때 병인박해로 9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순교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프랑스 함대가 1866년 9월과 10월에 무력으로 조선을 침범하였다. 

조선정부는 프랑스함대와 교전 후 천주교 신자들을 여기에서 처형하였다. 이유는 프랑스 함대가

올라왔던 한강 양화진에서 신자들을 처형함으로써 책임을 전가하고 본보기를 보이려 한 것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유명 무명 신자들이 처형된 양화진은 순교자들의 목이 베어진 곳이라 하여

신자들 사이에서 '절두산(切頭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당시 국법으로 금지했던 천주교 신앙을

비밀리에 받아들였던 수많은 초기 신자들이 여기에서 목이 잘려 산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순교한 것으로 확인된 신자수는 29명(무명 5명 포함) 뿐이라고 한다.

 

모진 세월을 견디며 여러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인동초의 부활신앙으로 절망을 이겨냈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그리고 민족화합의 큰 스승이었던 김대중 대통령님의 서거를 애도한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믿고 그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던 진정한 신앙인이었던,

'후광' 선생의 정신을 기리며... 지난 6월 언젠가 찍어두었던 사진을 정리해서 올려본다.

 

 

여기서 목이 베어졌던 순교자들을 상징하는 순교 기념비
수많은 목이 베어졌던 곳이라 '절두산'이라는 별칭이 붙은 순교성지
절두산 순교성지 기념성당 및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1984년 5월 한국 천주교 200주년과 103위 순교자 시성식을 위해 방한했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기념비
잘 조성된 정원에 싱그러운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네요.
수녀상도 있고...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는 십자가의 길
한 여성신도가 십자가의 길을 차례로 순례하며 의미를 새기고 있다.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가시는 예수
한국인 최초의 신부였던 김대건 안드레아, 1846년 순교당시 약관 25세
한국인 최초의 신부였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상
절두산 정상에 1967년 세워진 기념성당과 순교자박물관, 지하실에 순교자 유해 안치실이 있다.
'서양오랑캐 침범에 대항해 싸우지 않으면 매국'이라고 새겨진 척화비
순교자들의 희생을 기리는 기도처
순교자들의 영정에 바치는 촛불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 목이 돌아가고 손이 묶여 있다.
절두산 순교자 기념 성당
바닥에 새겨진 십자가 모자이크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문호를 걸어잠그고 쇄국정책을 펴 종교의 자유가 전혀 없던 시절 서양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한강변 양화진에서 처참하게 목이 잘려나갔던 그곳에 '절두산'이라 이름한 '피의 절벽'이 있다.

"죽음 초원한 그날의 선조들,  칼날 번뜩이는 박해의 세상 연연하지 않고,

 도도히 강에 어리는 영생의 핏빛을 벼랑 위에서 초연히 바라보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