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가지 생각을 오만번의 기도로 바꾸라"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조각조각 숨어 꿈틀거린다.
조각난 나는, 나의 정체성을 흔들기도 하고...
건실한 나를, 암세포처럼 침투하여, 병약하게 무너뜨리기도 한다.
옛말에‘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는 말은, 지당한 말인 듯싶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각난 자아들의 의해, 오만가지 생각(고민)을 하며 지낸다.
때로는, 다중인격자처럼 말이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로...
생각이 깊어지고 지속되면 고민이 되고, 병이 되기도 하고, 인격을 파괴하기도 한다.
아담 이후로, 타락한 인간은.. 노력하지 않아도 고민하고, 수고하지 않고도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 오만가지 생각과 고민을, 멈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오만가지 고민을, 창조적인 마인드로 전환시킬 수는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소스가, 기도와 묵상이다.
기도는..
단순하게 나의 소원을 토로하고, 주문을 외우듯이 반복되는 외식행위가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관계이며, 만남이다.
그런 면에서 기도는, '말하는 시간'이기보다는, '듣는 시간'이어야 한다.
기도시간에, 하나님은 우리의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의 초점은 응답이나 축복이 아니라, 회복과 그분의 뜻에 맞추어져야 한다.
세상에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사람을 바꾸는 일이다.
우리가 예수를 수십 년 믿어도, 잘 바뀌지 않는 것을 경험하지 않는가?
그러나 참된 기도는 사람도 바꾸어 놓는다.
고민을 노래로, 불안을 평안으로, 악을 선으로, 늑대를 양으로 바꾼다.
그러나 기도 외에는..
교육이나, 몽둥이나, 잔소리나, 수양으로는, 겉은 바꿀 수 있어도, 속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누구나 내면 깊은 곳에는, 애굽에서 학습된 인독(쓴물)이 내재해 있다.
그 독은, 평상시에는 잠복해 있다가..
어느 계기가 되면, 주저 없이 폭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토머스 홉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사람에게 이리와 같이, 잔혹한 존재이다.”
그렇다. 사람만큼, 무서운 존재는 없다.
사람이 무서운 것은 순한 양의 탈을 쓰고, 늑대같은 짓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양이 되었다가 늑대가 되었다가, 아니면 양의 모습을 하고, 늑대가 되기도 한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기도 하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기도 한다.
애증이 교차하는 것이, 인간의 다중적인 감정이다.
결혼 전과 결혼 후가 다르며, 조석 간에 변화가 무쌍하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있어도..
우리안에 침전되어 있는.. 독성, 쓴물, 악성, 죄성(성질머리, 모난 성격, 변덕스런마음..)은.. 잘 변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말이 유행하는 듯 하다.
"예수를 믿어도, 성격은 못 고친다."
아니다. 제대로, 안 믿어서 그렇다.
제대로 믿으면, 우리를 만드신 이가, 어떻게 고칠 수 없다는 말인가?
사람은 아무리 자신을 교양과, 우아함과, 단장과, 지성과, 고상함으로 가장을 해도..
속을 휘저으면, 구정물과 같다.
구정물은 오래두면, 맑은 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손을 넣어 휘저으면..
그 속에 내재되어 있던, 온갖 더럽고 역겨운 음식물 쓰레기들이 올라온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도 구정물같은 독성, 죄성들이, 뼈속에.. 혈관속에, 침전되어 흐른다.
평상시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다가도..
누군가 나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침전되어 있던 구정물은, 독이 떠올라, 상대를 할퀴고, 찌르고, 후벼 판다.
그래서 걸러내지 못한 구정물같은 인독을, 그대로 두고 예수 믿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나를 포함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분량의 인독이 흐르고 있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서슬 퍼런 분노와 증오, 그리고 시기와 탐욕, 질투, 오만으로 이글거린다.
용암처럼 이글거리는 인독의 분출구를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뿐이다.
우리는 연말이나 연초가 되면, 산에 올라가 기도로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다.
무엇을 위해, 산을 오르는가?
대부분 소원성취나, 사업번창 아니면 자녀들의 성공과, 가정행복을 위해..
금식하며, 부르짖는다.
그러나 이제는 기도의 패턴도, 내용도,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산에 올라, 기도하는 이유는..
더 많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묵상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알아야 믿고, 들어야 순종하지 않겠는가?
물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감이, 이미 승리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패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 시간을 쪼개어 조용한 장소에 수시로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듣는 자세로 몸을 낮추어, 나아가야 한다.
'오늘은 몇 시간 기도할까?', 여기에 집착하지 말라.
기도의 시간이 영력도 아니며, 공로도 아니다.
올바른 기도는, 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주의 음성을 들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묵상'이라는 말은..
영어로,‘메디테이션(meditation)"이다.
이 단어는‘약(medicine)'이라는, 영어단어의 어근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묵상은 ‘약’이라는 뜻이다.
영혼의, 보약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고 값비싼 보약이라 할지라도, 먹지 않으면 소용없다.
약은 믿음을 가지고 먹을 때, 화학반응을 일으켜, 병을 치료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도와 묵상이, 아무리 우리 영혼의 웰빙에 좋다 해도, 적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간절한, 기도와 깊은 묵상은..
우리의 내면에 침전되어 있는 독소들을 제거하는, 신령한 해독제(解毒劑)이다.
그러므로 기도에 대하여 생각만 하거나, 부담감만 가지고 있으면 안된다.
그 사람은, 약을 사다놓고, 먹지 않는 사람과 같은 것이다.
약은 믿음으로 먹을 때, 약효가 나타나듯이..
기도와 묵상도 믿음으로 적용할 때,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오만가지 생각을 가지고, 백년을 고민하는 것보다..
간절한 기도와 깊은 묵상으로 보내는 한 시간이, 더 효과적인 보약이다.
이러므로 성도의 삶에 있어서, 고민을 대체할 방법은, '오직 기도' 뿐이다.
제대로 기도하면, 변한다.
변화시키지 못하는 기도는, 가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동안에, 기도하는 자의 영혼을 만지시기 때문이다.
오만가지 생각은 스트레스를 낳고, 스트레스는 뼈를 상하게 한다.
그러나 올바른 기도는, 우리 인체의 부교감 신경을 자극하여..
온 몸에 약공장을 가동시킴으로, 영육간의 건강에 극대한 유익을 주고..
내적치유와 아울러, 조각나고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들을, 회복케 하고 소성케 한다.
아무리 과학만능주의와, 황금만능주의와, 외모지상주의가, 우상이 된 세상이지만..
기도의 위력을 대체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생은, 생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무릎으로 살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고민은 만가지 병을 발병케 하지만, 기도는 만병을 치유하는 보약이 되는 것이다.
내가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라면...
이제 오만가지 생각과 고민을, 오만번의 기도로 바꾸라.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의 십일조만이라도, 기도에 투자하라.
그러면 크고 비밀한 일들을 만나게 되고, 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은 참으로, 예수면 충분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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