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인사이트] 치유공간으로서 농촌의 가치와 역할
□ 몸과 마음의 치유를 원하는 트렌드 확산
요즘 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도시를 떠나 휴식을 얻기 위해 한적한 들과 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소득수준이 향상되자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집중되었던 웰빙(Well-being)은 인간과 자연 모두의 치유를 통해 행복하고 지속적인 삶을 추구하는 힐링(Healing) 트렌드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이후 등장한 힐링 추세는 특히 TV프로그램(힐링캠프)과 감성마케팅 광고 등의 영향으로 휴식과 건강, 정신적 안정 등에 목마른 사회분위기와 맞물려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이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힐링은 경기침체와 경쟁심화, 생활고와 취업불안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비슷한 개념의 릴렉세이션이 등장하여 상당한 비중을 가진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뉴스위크지는 2000년 이후 신체건강보다 정신건강을 위한 산업이 등장할 것이라 예측하였으며, 유럽에서는 헬스케어의 일환으로 노약자 복지 측면에서 녹색 치유농장이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힐링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하고 있지만 이해는 부족한 편이다. 영어사전에 힐링은 마음이나 상처를 낫게 하는 치료·요법 등으로 해석되나, 트렌드에서 말하는 힐링은 우리말의 치유에 가깝다. 국어사전에 치료는 상처나 증상을 다스리는 행위 즉, 의료기술이 동원된 의학의 영역인 반면, 치유는 치료를 통해 상처가 나아가는 과정에 관여하는 요법 등을 담은 의미이다. 원예치료 등 다양한 치유활동과 함께 생태치료, 야생치료 등 녹색치유의 공간으로 농촌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농촌진흥청 인테러뱅).
□ 휴식과 치유의 공간으로서 농촌의 가치
전통적으로 국민이 보는 농업·농촌의 역할은 식량의 안정적 공급과 자연환경 보전에 집중되는 것으로 한정되어 왔다. 그러나 도시민들은 농촌의 역할이 안전한 농산물의 안정적 공급과 더불어 전원생활의 공간, 환경보전, 전통문화의 계승, 관광 및 휴식 장소 등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은 물론, 전통문화, 환경보전, 휴식공간 등 치유의 기능과 관련한 요인들의 중요도가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국민의식 조사).
농촌은 정주공간으로서만이 아니라 개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일생의 희망사항(Bucket list)을 실현하는 무대로 조명 받을 잠재력을 갖고 있다. 리서치&리서치의 2018년 정기여론조사 결과, 버킷리스트로 도시(34.5%)보다 도농복합, 섬-어촌, 농촌-전원지역, 산촌을 포함한 농촌(61.6%)에서 꿈을 실현하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20대 이하에서는 절반가량이 도시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를 희망했지만, 높은 연령층으로 갈수록 농촌지역에서 희망을 실현하려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농업·농촌이 제공하는 가치의 소비자인 도시민들이 바라는 근원에 무엇이 내재되어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쟁에 지친 도시민들이 신체 및 정신적인 피로감을 농업·농촌에서 치유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을 무대로 한 치유의 핵심은 국민이 원하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 즉 식량안보, 수자원 보존, 국민정서 순화, 경관 및 생태계 보전 등에서 국민정서의 순화 및 경관보존 기능 등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란 농산물의 시장판매와 무역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 이외의 또 다른 형태의 비교역적 이득을 말한다. 핵심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우리 농업과 농촌이 아닌 다른 나라의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족한 국민들의 식량은 외국산 농산물로 충당한다고 하더라도 정서의 순화, 경관 보존 등은 대체가 불가능하다. 정서순화 기능은 심리를 안정시키고 생활의 여유를 갖게 하는 것이며, 경관보존 기능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산, 들, 강, 마을을 지키는 것이다.
정서순화와 경관보존의 기능 등을 통해 국민의 건강을 회복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 농촌에서 치유의 본질이다. 단순히 농촌생활에서 오는 전원생활, 심리적 안정감을 넘어, 기존 의료 부문과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농업이 출현하는 것이다. 다원적 기능의 또 다른 이름인 농촌 어메니티(Amenity)는 사람들에게 휴양 및 심미적 가치를 제공해 주는 농촌에 존재하는 특징적인 모습들을 총칭하며, 최근 농촌다움이라는 용어로 순화되었다.
농촌다움이란 농촌지역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제고하는 자원이다. 즉, 농촌지역에 존재하는 생물종의 다양성, 생태계, 농촌경관, 지역고유의 정주 패턴, 경작지, 고풍스러운 건축물, 농촌공동체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 등 농촌 고유의 가치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유·무형의 자원을 의미한다(농촌진흥청 홈페이지). 농촌다움 자원은 그 지역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과 차별성을 기반으로 지역의 활력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요체로서 지역을 대표하는 이미지 형성의 유효한 수단이자, 상품화를 통해 소득원으로 개발할 수 있는 원천이 된다
농촌다움 자원은 자연적 자원, 문화적 자원, 사회적 자원이 있는데, 농촌진흥청에서 2005년부터 전국단위 조사결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통적 농업방식을 보여주는 상신마을 참다래(보성), 명전리 수수밭(문경), 아름다운 다랑논(산청) 등이 있다. 자연경관은 농촌의 하천, 저수지, 산림 등 자연적인 요소가 주요 대상으로 녹색치유 공간으로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주거지 경관은 농촌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주택과 시설 등이 주변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모습으로 성산포 밭담(제주), 청산도 상서마을 돌담(완도), 선비가 걸어간 길(영양) 등이 있다. 농촌에 위치하는 다양한 역사문화 자원은 축제, 놀이, 이벤트 등을 포함한다.
□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공간으로
인류가 치유의 목적으로 농업을 이용하기 시작한 역사는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되었다. 생명력을 지닌 녹색공간으로 정원이 주는 정신적 안정감은 이미 2천 년 전에도 강조되었으며, 중세시대 병원에서는 정원을 가꾸거나 소규모 텃밭을 조성하여 환자들의 재활에 활용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유럽에서 이루어져 온 치유농업은 국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힐링 트렌드에 맞춰 우리나라에서도 농촌을 무대로 한 치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나 아직은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치유공간으로서 농촌의 기능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첫째, 농촌은 천혜의 자연자원을 간직한 보고로서 정신적 불안장애를 가진 국민의 휴식 중심지, 건강한 먹거리 문화의 보존지로서의 가치 등이 재조명되고, 농업 자체의 환경생태 보존, 수자원 보유 등 다원적 가치가 재평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자연체험을 통해 도시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더 넓은 범위의 세계를 인식하며, 자연을 관찰하며 매료되고, 편안함을 얻는 등의 치유효과로 잘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선진국인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도 농촌의 치유기능에 대한 산업화는 아직 시장진입 단계로 후발국인 우리는 더욱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농업과 의학, 관광 등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국가주도 기반연구가 시급하다. 생태보존, 예방, 재활, 생활환경 개선 등 농촌의 치유기능을 발굴하고 활용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공익적인 목적으로 보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발의된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 농촌의 자연경관과 전통문화를 활용한 농촌체험, 명상과 휴식 등을 위한 휴양시설, 전통음식 농가맛집, 미래세대에게 전통을 계승하는 교육농장, 농업을 통해 필요한 것만 채우는 동시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반농반x의 삶’으로 작지만 실현가능한 행복(소확행)을 실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텃밭농업의 확대 등 공익적인 측면으로 농촌에서의 치유효과를 확대하는데 정책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셋째, 농촌의 자연경관과 전통문화를 활용한 농촌체험, 명상과 휴식 등을 위한 휴양시설, 전통음식 농가맛집, 미래세대에게 전통을 계승하는 교육농장, 농업을 통해 필요한 것만 채우는 동시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반농반x의 삶’으로 작지만 실현가능한 행복(소확행)을 실현하는 텃밭농업의 확대 등 공익적인 치유농업의 효과성을 확대하는데 정책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 미래로 가는 전남농업, 2019년 8+9월호
전남농업정보(201908)_치유공간으로서 농촌의 가치와 역할_박평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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