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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계곡에 봄이 오는 소리

곳간지기1 2010. 1. 28. 22:26

 

어제 그제 이틀간 벼 분야 연구원 워크숍이 있어서 공주에 있는 계룡산에 다녀왔다.

계룡산 북서쪽의 후사면에 있는 '갑사유스호스텔'에서 쌀 관련 연구원 70여명이 모여,

쌀 소비촉진 관련 외국사례 벤치마킹 세미나도 갖고 여건변화에 대응한 미래연구방향,

연구분야 중복성 개선방안 등 분임토의와 발표, 종합토론 등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도랑치고 가재잡고, 님도보고 뽕도따고, 일하면서 새벽에 짬을 내어 구경도 하고..

 

시설은 낡았지만 오붓한 곳에서 워크숍으로 진지한 토론도 하고 급변하는 연구환경에

대응하여 우리쌀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도약하자는 결의도 다졌다.

앞으로 정기적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연구원들의 친목과 기관간 업무조율도 하고,

새로운 동향과 정보도 공유하며 이제까지 했던 것보다 더 잘해보자는 다짐도 했다.

동학사 쪽으로는 여러번 등산도 했지만 갑사 쪽으로는 처음이어서 관심이 많았다.

 

모처럼 산밑에서 숙박을 했으니 일찍 일어나 연천봉을 목표로 등산을 해보고 싶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숙소를 나섰더니 너무 캄캄해서 장비없이 산행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갑사를 둘러보고 자연관찰로를 돌며 날이 밝기를 기다려 계곡으로 용문폭포까지 갔더니,

금잔디고개, 남매탑 방향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천진보탑이 있다기에 거기까지 갔다.

용문폭포 계곡의 물소리가 정겨웠고 얼음이 녹고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계룡산의 유래를 보면 재미있다. 조선태초 이성계가 신도안(지금의 계룡시)에 도읍을

정하려고 무학대사를 대동하고 여기를 둘러보니 산의 형국이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

(金鷄胞卵形), 용이 하늘로 오르는 형국(飛龍昇天形)이라 하여 닭(鷄)과 용(龍)을 따서

 계룡산(鷄龍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총면적 65㎢, 천황봉(845M)을 중심으로

관음봉, 연천봉, 삼불봉 등 28개의 봉우리와 동학사, 갑사, 신원사 등 천년고찰이 있다.

 

계룡산 갑사 계곡에서 금잔디고개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용문폭포... 겨울인데도 눈이 많이 내려 수량이 제법 된다. 

  

벼 관련 연구원 70여명이 계룡산 갑사유스호스텔에 모여 워크숍을 갖고 힘찬 도약을 결의하다.

  

공주 계룡산 갑사로 들어가는 길(먹거리장터)

 

 계룡산 갑사 들어가는 길

 

계룡산 국립공원 안내도, 갑사 쪽에서 관음봉 넘어 동학사로 내려가면 좋은데... 

 

 새벽 일찍 어둠을 가르며 둘러본 천년고찰 계룡갑사 강당(충청남도 유형문화재 95호)

 

계룡갑사는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년)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신라최초의 사찰인 도리사를

창건하고 고구려로 돌아가던 중 백제땅 계룡산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산중에서 상서로운 빛이

하늘까지 뻗쳐오르는 것을 보고 찾아가니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천진보탑'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다 갑사를 창건하였는데 위덕왕3년(556년) 혜명대사가 중건하고, 그후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천여칸의 당우를 중수하고 '화엄10대사찰'의 하나가 되어 번창하였다고 한다.

    

삼성각(문화재 자료 제53호), 불교가 토착화하면서 나타난 신앙인 칠성, 산신, 독성의 삼성을 함깨 모신 곳

 

칠성(수명장생을 주관하는 별), 산신(만사형통을 주관하는 토속신), 독성(스승 없이 혼자 깨달은 성자)의

삼성은 모두 불교 밖에서 수용한 신이기 때문에, 건물은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이라고 한단다.  

 

새벽 어둠을 헤치고 접근한 갑사계곡의 천진보탑(天眞寶塔), 인공탑이 아니고 탑모양을 한 자연바위다.

석가모니 사후 사리를 동서남북 48방향에 봉안케 했는데, 다문천왕이 여기에 봉안했다는 전설이 있다. 

 

계룡산 중턱의 천진보탑에서 새벽녘에 내려다본 산세

 

 갑사 계곡의 얼음이 녹아 흐르는 물소리

 

계룡산 계곡에 봄이 오는 소리

 

얼음이 녹아 흐르는 청아한 물소리를 통해 봄이 오는 소식을 느낄 수 있었다.

 

갑사 자연관찰로 안내도

 

아침식사 시간에 맞춰 내려오면서 다시 담은 계룡갑사 강당, 조선시대 후기의 웅장한 건축물이다. 

  

 1614년(광해군 6년) 창건한 건물로 승려들이 불경을 학습하거나 법회를 갖던 곳이다.

 

 갑사 범종루, 종과 북이 있다.

 

대웅전 왼쪽의 진해당 처마에 메주가 주렁주렁

 

갑사 대웅전은 정유재란(1597) 때 불탄 건물을 1604년(선조 37년) 다시 세웠고, 1875년(고종 12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축양식은 조선시대에 성행하던 '다포식(多包式)'이면서도 맞배지붕으로 지어 외관이 화려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국보 제 298호인 삼신불 괘불탱화(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모니불, 노사나불 등 3신불의 설법 장면)가 이 안에 있다.

 

계룡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표충원은 영조 14년(1738년)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격퇴한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건물 안에 서산대사 휴정, 사명대사 유정, 그리고 기허당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계룡산 갑사사적비(유형문화재 52호), 조선 현종원년(1659년)에 건립되었으며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갑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괴목대신 : 매년 정월 초사흘 괴목대신제의 유래(믿거나 말거나...)

 

약 300여년전 갑사 장명등(밤새 불을 켜두는 등)의 기름이 없어지는 것을 이상히 여긴 스님들이

기름을 훔쳐가는 물체를 따라가 보니 이 괴목의 '당산신'이었다고 한다. 그 연유를 묻자 당산신은

사람들이 담배불로 이 나무에 상처를 내어 이를 치유하기 위해 장명등 기름을 발랐다는 것이었다.

스님과 마을 사람들이 괴목 주위를 잘 정리하자 마을에 돌았던 역병도 없어졌다고 한다.

 

계룡산 갑사를 돌아나오는 길에 음식점과 민박촌이 있는 입구 장승에 "좋은 인연 되옵소서!"

다음에 다시 와서 갑사에서 연천봉, 관음봉을 넘어 동학사로 넘어가는 등반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