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일까?"
수십억원의, 복권 당첨일까?
죽을 병에서, 살아나는 것일까?
노처녀가, 시집가는 것일까?
100살에, 아들을 낳는 것일까?
열명 나오던 교인들이, 하루아침에 천명 나오는 것일까?
그런 기쁨이라면, 과연 며칠을 갈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역사 이래로.. 가장 크고 엄청나고 기절할 정도의 기쁨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의 기쁨'이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4백여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하루아침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것도,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은혜로 된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였다.
뿐만 아니라, 금은보화를 한 움큼씩 손에 쥐고, 홍해를 건넜다.
배를 타고 건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바닷길로 걸어 출애굽을 하였다.
상상해 보라!
상상이, 잘 안된다.
그들은 펄펄 뛰기도 하고, 뒹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고..
서로 부둥켜 앉고, 고생하던 옛 이야기를 나누며, 잠을 설치기도 하며..
소리 높여, 노래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 기쁨을 감출 길이 없었고, 세상의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잠을 자도 일어나도, 히죽 히죽 웃음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당연하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 기쁨의 영향권 안에는 예외가 없었으며,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며칠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퇴원을 해도..
어딘가에 몇 시간만 갇혀 있다 나와도, 춤이라도 출 듯, 그렇게 기쁘고 좋은데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너무나도 기절할 정도의 기쁨을 소유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라는, 현실 앞에서...
물이 없다는 갈증 앞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물이 없는 것은 없는 것이고, 광야는 광야이고, 힘든 것은 힘든 것이고,
출애굽을 하여 홍해를 건넌 기쁨은, 간직하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내적기쁨은, 고생과 광야라는 현실 앞에서 식기 시작했고..
기뻐한 만큼, 불평과 원망이 고개 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며, 우리의 "3일 영성"이다.
우리는 도무지 구원 받을 자격도, 공로도 없이, 지옥 갈 사람들이었다.
본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진노의 자식이었다.
평생을 두고, 죄와 저주와 불행의 종살이를 해야만 하는, 불쌍한 인생들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지팡이로 출애굽 했듯이..
우리도, 하루아침에.. 예수님의 구주를 믿어 구원받았다.
이제는, 애굽의 종이 아니다.
이제는, 죽어도 지옥에는 못갈 사람들이다.
이제는, 죽어도 살 사람들이다.
이것이, 세상을 다 주고도 못 바꿀, '구원의 기쁨'이다.
그런데 우리의 기쁨은, 돈 몇 푼 앞에서, 육체의 연약함 앞에서, 실패 앞에서..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목이 마르다는 이유 앞에서..
내 앞에 가로 놓인 실개천 앞에서..
사방이 막힌 현실 앞에서..
구원 받은 감격도, 예배를 통해 얻은 기쁨도, 임재를 통해 얻은 황홀함도..
기도의 터치를 통해 얻은 감사도, "3일을" 못 넘긴다.
'망각의 은사' 때문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건넜다는 사실과..
강팍한 바로와 그의 군대로부터 자유케 되었다는 사실을, 금방 잊어버린다.
그리고, 영의 눈이 밝은 것이 아니라..
육의 눈이 밝아져, 현실을 얼마나 뚫어지게, 바라보고 사는지 모른다.
그뿐인가?
다른 수에는 둔하면서도, 불가능함과 어려움과 고난을 계산함에는..
얼마나, 셈이 빠른지 모른다.
기절할 정도의 기쁨으로 살다가도, 기막힌 현실만 다가오면, 재빠르게 기쁨은 슬픔으로..
감사는 원망으로, 믿음은 의심으로, 기도는 한숨으로 대신한다.
광야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기쁨..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감사를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그렇다.
진짜 기쁨은, 밖에서 흘러들어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가뭄에도 옹달샘이나, 깊은 우물은 마르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물을 쏟아 부어도, 물을 담을 바가지가 깨어진 바가지면..
물 한방울도, 남아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주님이 문제가 아니라..
기쁨과 은혜를 담을, 내 그릇의 용량과 수준이 문제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주님을 절대 신뢰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우리의 기쁨을 3일도 못 가게 만드는 것이다.
물이 문제가 아니라, 바가지가 문제이다.
물이 없으면 어떤가? 홍해를 건너게 하신 주님이 물을 못 만들까?
길이 없으면 어떤가? 홍해 속에도 길을 만드신 주님이 길을 못 만드실까?
사방이 광야이면 어떤가?
사방에 주님의 권능이 충만한 것을 믿는다면, 무엇이 걱정일까?
일곱번 실패하고, 넘어졌으면 어떤가?
여덟번 일어나게 하실 주님이, 전능자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믿음의 뿌리가, 주님이어야 한다.
믿음의 뿌리가, 감각이거나 환경이면 안 된다.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는, 홍수나 폭풍에도 안전하듯이
주님에게 뿌리 내린 믿음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삶을 살게 한다.
흔들린다는 것은 뿌리가 얕다는 증거이다.
피상적인 믿음이거나, 혼적인 믿음이거나..
믿음이 아니라, 신념이기에 그런 것이다..
주님이 살아계시고(Living God), 주님이 내편 되어 주신다면..
넘어져도 일어나고, 막혀도 뚫리고, 안되는 것 같아도 잘되고..
병든 것 같아도, 강건해지고..
실패한 것 같아도 성공하고, 백번 안 되었어도 101번째 잘될 것이고..
주님 내편 되시면, 감옥에서도 총리 되고..
10가지 재앙 속에서도, 갑절의 축복을 소유하게 되고..
물고기 뱃속에서도, 선교사로 쓰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이 꼬이게 하시면, 죽어도 안되고 천명이 풀어도 안 풀리고..
주님이 막으시면, 포크레인으로 뚫어도 안 뚫리고..
주님이 내 재물 안 지켜 주시면, 세콤으로도 못지키고..
주님이 내 건강 안 지켜 주시면, 삼시 세끼 보약으로 주식삼고, 산삼으로 간식삼아도..
늘 아프게 마련이고..
주님이 안세우시면, 타워 크레인으로도 못 세우고..
주님이 안쓰시면, 기고 나르는 재주 있어도 쓰임 받지 못한다.
이러므로 참된 기쁨은,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린 기쁨이어야 한다.
외적인 기쁨의 요소들은, 3일을 못 넘기게 한다.
그러나 내적인 기쁨의 요소인..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흐르는 기쁨은, 물댄 동산 같은 기쁨이다.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기쁨이다.
주님을 생각만 해도 기쁘고, 주님을 바라만 봐도 기절할 것 같은 기쁨이다.
목이 마르고, 병이 들고, 가난하고, 실패하고, 막히고, 안되고...
그런 것들이 내적인 기쁨을 억압하지 못하게 한다.
고난은 믿음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초월하는 것이다.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감옥에서 14년 옥고를 치루면서..
밤마다 주님과 춤을 추었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고..
그의 저서 '하나님의 지하운동'에서 밝히고 있다.
그분이 출옥을 한 뒤 기자들이 물었다.
'목사님은 어떻게 독방에서 14년을 견뎠습니까?'
목사님은 대답했다.
"나는 믿음을 초월한 내적인 기쁨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무서운 고문과 시련들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하여,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신다고 생각되는가?
주님이 나에게는 침묵만 하신다고 생각되는가?
아니다.
절대 그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여년 동안 종살이 할 때..
하나님은 모른 척 하신 것도 아니고, 아무 일도 안하신 것이 아니다.
그런 것처럼 보일뿐이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 중에 있을 때, 모세를 준비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만히 계신 적이 없으시다.
다만 당신을 위한 시간을 계산하고 계신 것이다.
때가 차야 한다.
그때까지 우리의 할일은 죽는 일(자아)이다.
주님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시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주님도...우리도... 잘 알고 있다.
잠깐 기뻐할 수는 있다.
며칠은 기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항상 기뻐하는 것은, 내가(자아) 죽어야 가능하다.
성령은 희락의 영이시다.
우리 안에는, 성령이 내주해 계심으로..
그분은 우리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영을 솟아오르게 하신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도우신다.
그러나 나의 못나고 단단한 자아가 커다란 짐되어 기쁨을 사라지게 한다.
자아를 뚫고 나오기에는, 우리 자아의 두께가 너무 두껍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기쁨을 부으신다.
그러나 우리의 바가지가 깨어져 있거나, 용량이 작으면..
아무리 홍수같은 기쁨을 부어 주셔도, 우리의 기쁨은 3일을 넘기지 못한다.
요한 캘빈은..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기쁘지 않은 날이 별로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교인들은 어떤가?
그리스도를 만났어도, 슬프지 않은 날이 별로 없어 보인다.
어느날 천억이 공짜로 생겼다면, 천원을 잊어 버렸어도 크게 낙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짜로 얻은 돈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소유한 구원의 기쁨과 복음의 비밀은, 천억보다 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원같은 현실의 고난 앞에서..
천억같은 기쁨을 잃거나 빼았기면 안된다.
천억을 공짜로 주신 분에게 도리가 아닐 것이다.
기뻐하는 것은, 내 맘대로.. 노력으로...외적인 요소들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쁨의 근원되시는 주님을, 충만히 소유하며..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때, 저절로 솟아오르는 샘과 같은 것이다.
그 기쁨을 소유하면
아프면 어떻고, 건강하면 어떻고
부요하면 어떻고, 가난하면 어떻고
노처녀이면 어떻고, 실직자면 어떻고
성공했으면 어떻고, 실패했으면 어떻고
저택에 살면 어떻고, 쪽방에 살면 어떨까?
주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은..
그런 외적인 요소들과는, 아무상관이 없을 수 있는 에너지를, 방출하게 한다.
저절로 얻어지는 기쁨, 저절로 마냥 좋은 기쁨, 주님을 생각만 해도 설레이는 기쁨..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비밀병기'이다.
그 기쁨이라면, 30년도 넉넉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마르지 않을, 기쁨의 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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