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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밟는 우리의 자화상

곳간지기1 2010. 6. 5. 16:36

 

인생의 후반전을 살면서 그동안 숨가쁘게 달려왔던 여정을 한번 되돌아보자.

   "나는 누구인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자화상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시인이자 중학교 교감인 나성훈 집사님의  '긴 그림자를 밟는 우리의 자화상'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쌀사랑]

 

 

 

"인생의 후반전에서 긴 그림자를 밟는 우리의 자화상"

 

인생의 후반전에서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주며 가정을 위해 모든 것을 다 견디고,

직장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으며 내 정성 내 수고 아끼지 않고 살아왔건만,

휴식 없이 뛰어온 그 속도로 숨을 몰아쉬다가 현기증에 잠시 멈춰서 뒤돌아보면

어느 새 흔들리는 내 긴 그림자를 밟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위에서 누르는 압력에 뒷목이 뻣뻣해지고,

실력 있는 후배들이 내뱉는 한마디 말에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도,

신음소리 하나 겉으로 내지 못하고 태연한 척하며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것은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그 눈물을 눈 속으로 다시 넣는 것임을 주님은 아시는지요?


주일날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봉사를 하고 있지만 내 자신 충전되는 것보다

쏟아 내야하는 것이 더 많은 나이가 되니 눈에서는 피곤이 떨어질 새가 없으며,

이제는 무슨 일을 해도 책임을 져야하는 나이인지라 행동과 물질이 함께 따라야 하는데

이 두 가지를 다 하기엔 부족하고 그냥 뒤쳐진 채로 있기에는 마음이 너무 무거워,

조건반사처럼 일을 하니 주님, 안식보다는 휴식이 더 필요합니다.


젊었을 때에 당당하게 큰소리치면서 살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점점 줄어들고 일하면 쉬 지쳐 파김치가 되는 집사람을 바라보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냥 안타까워 빈손 잡아주는 것 밖에 없고,

더군다나 내 마음처럼 안 되는 것이 자녀교육이라더니 왜 부모 마음을 그리도 몰라주는지

근심과 걱정으로 밤을 하얗게 새우다 눈물로 동트는 아침을 흥건히 적시기도 했습니다.


가슴 저 깊숙한 곳부터 아려오면서 뻐근해지는 이 마음을 주님!

부모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인지요?


그래도 살기 힘들었지만,

1950년대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도 찬물을 들이키면서 청보리처럼 일어났고,

1960년대 빛바랜 흑백사진의 초등학교 교정에서 검정고무신을 신고도 즐겁게 뛰놀며 공부했습니다.

1970년대 도시락에 잡곡을 섞은 혼식을 먹으면서도 흰 이 드러내며 활짝 웃는 행복이 있었고,

1980년대 아이 태어났다 좋아하며 찍은 돌사진 속에 남아 있는 긴 머리는 아직도 바람결에 날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1990년대 마누라 빼고는 다 바꿔야 살아남는다는 말에 충격이 오기 시작하더니,

2000년대 이제는 세상에서 눈치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눈총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슬픈 자화상을 아시는지요?


마음은 있지만 몸은 점점 무거워져가며 생각은 많지만 실천을 제대로 못하는 나이에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또한 늙으신 부모님의 자식으로서

어느 하나 잘하는 것 없이 모두 다 해야 하는 축 처진 어깨로

인생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오늘, 그래도 마음은 아직도 어릴 적 동구 밖 뚝방길

미루나무 위에 앉은 까치처럼 혹시 반가운 손님 찾아오지 않나 하는 기다림으로

가슴에 별 하나씩 품고 밤마다 홀로 밖에 나가 별을 찾아 바라보지만,

천상의 별자리 가장 끝에서 홀로 슬프게 반짝이는 나를 바라봐야하는 서글픔을 하나님은 알고 계시는지요?


지금, 여기에서 흔들리는 긴 그림자를 밟고 제가 섰습니다.

기쁨보다 서글픔으로 눈가에 주름진 채 텅빈 충만함에 생각이 골다공증처럼

속빈 강정이 된 듯 가끔 멈춰 서서 무었을 해야 할 지 고민하는 제가 있습니다.


 2010. 5.  안수집사 수련회에 부침/ 나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