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老母)와 같이 가자 !
- 농업을 버리고 갈 것인가? -
어려서 들었던 이야기가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난다. 짧지 아니한 역사에 수도 없이 외침에 시달렸던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고난에 얽힌 일화이다.
어느 시골 마을에 왜군이 기습을 감행하는 날이었다. 왜군에 잡히면 죽는 판이었다. 그래서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비상식량과 노숙(露宿) 준비를 해서 산으로 급히 피난을 가고 있었다.
이 때,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피난을 가고 있었지만, 유독 한 가족은 왜군들이 손에 잡힐 듯이 달려와도 애가 탈만큼 느린 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을 추격하던 왜군의 지휘자가 가까이 뒤좇다가 자세히 본즉 남자의 등에 노모(老母)를 엎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에 아내는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어린아이들 손을 잡고 힘든 피난을 하고 있었다.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도저히 속도를 낼 수 없는 처절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 이 왜군 지휘자는 고향에 두고 온 자신의 노모를 기억하면서 부하들의 진군을 잠시 중지시켰다. 자기들이 살기 위하여 노모를 버리고 갈 수 있건만 끝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낳아서 길러주신 어머니를 엎고 피난길에 나선 그 가족이 안전한 곳으로 숨을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개방농정의 대명사와도 같은 FTA가 줄을 잇고 있다. 그 가운데서 풍전등화와도 같은 우리의 농업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실정이다. 절묘하게도 왜군과 피난길에 나선 노모의 일화가 떠오르면서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우리의 노모와도 같은 농업을 힘겨울지라도 엎고 동행할 수는 없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웃 중국은 ‘농산물 수출 11차 5개년 발전계획’에서 농산물 수출을 2010년까지 매년 7% 이상 확대해서 2010년에는 2005년 대비 40% 정도의 수출증대를 계획하고 여기에 몰입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수출 농산물의 안전성과 품질 수준을 대폭 향상시키고, 가공 농산물의 비중을 50% 이상 확대시킨다고 한다. 공격적인 농산물 수출정책이다. 우리나라가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는 소식이다.
UN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5년간(1999-2004) 세계 180여 개국의 농산물 수출액이 평균 46% 정도 증가하였고, OECD 30개국의 농산물 수출액은 45% 정도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동 기간에 33% 수준의 증가율을 보임으로서 세계적인 평균 수준이나 OECD 회원국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중국의 25% 수준, 일본의 -1.3%에 비하면 동북아지역에서 앞서가는 수출증가율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세계 농산물 수출액 대비 그 비중이 0.39%에서 0.35%로 하락하고 있어서 불안한 실정으로 볼 수 있다.
이제 FTA를 확대체결하고 농산물의 수입개방화가 더욱 확대되면서 기술과 품질 그리고 식품 안전성 면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R&D가 강화되고 농업인들에게 기술전파가 확대되어야 할 시점이다. 경쟁력 제고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 인수위원회가 제시한 농촌진흥청의 폐지는 아이러니한 발상이다. 아닌 밤에 홍두깨 같은 정책이라는 생각이다. 농촌진흥청과 같은 조직을 민영화한 일본 농업의 실패적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되지 않을까? 살얼음판 같은 국제시장에서 우리 농업이 생존하고 경제가 살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한시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정부의 중요한 정책적 변화가 한 나라의 농산물 경쟁력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이것은 이미 미국 농무성 경제연구청(ERS)의 남아메리카와 구 소련연방, 그리고 중국에 대한 농업연구에서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교훈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업정책은 신중해야 한다.
어렵고 힘든 농업분야를 더욱 우리나라의 경제적 동반자로 삼고 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농촌진흥청의 유지와 발전방향이 절실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어려울 때에도 변함없이 노모(老母)를 엎고 피난길을 나섰던 이야기의 주인공 같은 새 정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08. 2. 2.
전남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박 준 근 (전임 학장, 농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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