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유통정책, 원론에 충실해야
GSnJ 연구위원 양승룡(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
농민신문 2008. 10. 10.
농산물 직거래는 개별적인 차원에서 이뤄질 수는 있으나 농산물 유통의 주도적인 형태가 돼서는 안된다. 극단적인 예로 만약 모든 농산물이 직거래를 통해 유통된다면 유통비용이 훨씬 많이 들 뿐만 아니라 모든 생산자와 소비자가 거래 상대방과 적정가격을 찾아 헤매는 유통대란이 일어날 것이다.
유통단계를 인위적으로 줄이는 농산물 직거래는 유통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산지에서 소비지까지 형성돼 있는 각 유통단계는 그것이 아무리 많고 복잡하더라도 시장의 요구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유통단계를 인위적으로 줄이면 그 단계에서 수행했던 유통기능을 다른 단계에서 대신해야 해 필연적으로 비효율을 초래한다.
농산물 유통마진이 높은 것은 유통단계가 많아서라기보다는 부피가 크고 부패성이 강한 농산물의 특성으로 인해 유통비용이 많이 들고, 가격위험에 대한 프리미엄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각 단계에서 수행하는 유통기능이 비효율적인 이유도 있다. 따라서 유통마진을 줄이려면 유통단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각 유통기능의 효율화와 가격변동에 따른 위험 프리미엄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대형 소매업체와 생산자(조직)를 직접 연결하는 직거래를 통해 산지유통단계를 줄이면 산지수집상이 담당하던 가격위험관리며,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구매선을 찾는 것도 생산자가 직접 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결코 유통마진이 줄어들지 않는다. 또 도매단계를 줄이는 직거래를 한다면 생산자나 산지수집상들은 적정한 가격을 발견하는 데 훨씬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월한 지위의 대형 유통업자들과 직접 거래할 경우 계약을 이행하는데 드는 담보비용과 협상비용 등이 추가로 소요된다. 상장경매 수수료를 줄이기 위해 도매시장을 우회한다면 도매시장의 가격결정과 가격발견 기능이 약화돼 오히려 유통비용이 더 많이 소요될 것이다. 이는 표면적으로 절감되는 유통비용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시장실패를 초래한다.
유통효율화를 위해 정부는 유통단계를 인위적으로 줄이는 직거래보다 도매시장의 기능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고, 운영효율성을 제고시키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거래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대형 유통업체에게 직거래 매취자금을 지원하는 납득할 수 없는 일도 벌어져 대형 유통업체의 사업방식과 직거래의 의미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유통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노출되는 가격위험에 대한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 밭떼기 거래의 대안으로 도입된 계약재배안정사업이 더욱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을 할 필요가 있다. 밭떼기 거래의 계약이행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청산소’ 도입도 심도 있게 검토돼야 한다. 올 7월에 상장된 돈육선물도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더 많은 홍보와 교육지원이 필요하다. 나아가 채소지수나 옥수수·생우 등의 농산물도 선물시장에 상장돼 생산자나 유통업자들이 직면한 가격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농정당국의 시급한 과제다. 정부의 농산물 유통정책이 원론에 입각한 진지한 고민을 바탕으로 이뤄지기를 바란다.
'농업경영 정보 > 농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업은 생명산업, 국민을 위한 농업연구 (홍종운) (0) | 2008.10.27 |
---|---|
국내산 농식품의 생존전략 (임정빈) (0) | 2008.10.15 |
풍년, 소득안정 뒤따라야 (박동규) (0) | 2008.10.11 |
농업은 저탄소 녹색성장의 핵심 (강항원) (0) | 2008.10.08 |
‘식량주권 확립’ 절실하다 (양승룡) (0) | 2008.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