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식량/우리 쌀 이야기

둘만의 비밀 '밥풀이와의 여행'

곳간지기1 2010. 7. 13. 09:13

 

농촌진흥청 '쌀과 밥에 대한 어린이 글짓기 대회' 수상작 소개를 계속한다.

경기도 수원시 화홍초등학교 4학년 박채린 어린이의 "밥풀이와의 여행"이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1970년대말까지 쌀 2가마 가까운 140kg쯤 되었는데,

쌀 자급으로 국민의 배고픔이 해소되자 1980년대부터 줄어 74kg이 되었다.

  

'밥풀이와의 여행'은 어린이를 둔 가정에서 대부분 경험하는 이야기일텐데,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엄마의 밥타령을 솔직히 표현하고, 꿈 속에서 만난

밥풀이와의 여행을 통해 농사 지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힘든 모습을 보고,

밥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다짐으로 풀어나가는 어린이다운 재치가 돋보인다.

 

 

잡초 한포기 없이 잘 자라고 있는 벼를 행여나 문제가 없는지 매일 돌아본다.  

 

“밥풀이와의 여행”

- 쌀과 밥에 대한 어린이 글짓기 우수상 - 

 

경기도 수원시 화홍초등학교 4학년 박채린

 

 누구에게나 아침은 바쁜 시간이고 나의 아침도 항상 그렇다. 엄마의 일어나라는 소리에 놀라서 졸린 눈을 비비며 화장실로 가면, 등 뒤에서 또다시 들려오는 엄마의 소리! “얼른 씻고 밥 먹어야지! 아침밥을 먹어야 머리도 쌩쌩 잘 돌아가는 거야.”

 

나는 아직 잠도 안 깼는데 엄마는 아침부터 밥 타령이시다. 겨우 씻고서 학교 갈 준비를 하니 밥 먹을 시간은 커녕 열심히 달리지 않으면 어느새 지각할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제서야 나는 마음이 급해졌는데 엄마는 몇 숟가락이라도 먹으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어느새 밥을 된장국에 말아 놓고서는 신발을 신고 있는 내 입에 밥숟가락을 밀어 넣으신다.

 

‘어휴 참~’ 나는 짜증을 부릴 틈도 없이 나간다. 하지만 엄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까지도 밥그릇을 복도까지 들고 따라오신다. 그렇게 몇 숟가락이라도 내 입에 넣고 나서야 잘 다녀오라며 웃어주신다. 정말이지 우리 엄마는 못 말리겠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도 엄마의 질문은 또 밥이다. “급식은 잘 먹었니? 밥은 맛있었고? 밥은 현미밥이였니, 콩밥이였니?” 이런 질문에 답을 하고 나서야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물으실 정도이다. 정말 엄마의 밥 질문은 하루 종일이다. 만약 내가 급식을 조금만 먹었다고 하면 이렇게 말씀하실 게 분명하다.

 

"사람은 점심밥을 잘 먹어야 한다! 네 나이 때에는 점심밥을 잘 먹어야 키가 크고 건강해진다!"

 

아무튼 이렇게 하루 종일 밥과 붙어다니니 다른 게 먹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엄마에게 어떤 날은 라면을 끊여 달라고 하면, “아니 밥을 먹어야지 왜 라면이야” 라고 하시지만 결국 나의 고집에 끓여주실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옆에는 꼭 밥도 같이 주신다.

 

“라면은 조금만 먹고 이 밥은 다 먹어야 해 알았지?”

"으! 밥! 밥! 밥! 오늘은 안 만날 수 없는 거야? 지겹다 지겨워 정말"

 

바로 그 순간 밥공기 속의 밥풀 하나가 톡 튀어나와 내 손등 위에 올라섰다.

“너 자꾸 그럴래?”

"뭐야! 밥풀이 말을 하네!"

나는 신기해서 계속 쳐다보았다.

“너 자꾸 우리 밥풀이들한테 뭐라 그러면 큰일 날걸? 자! 나랑 같이 갈 데가 있어 따라와!”

 

어느새 나는 밥풀이와 하늘을 날고 있었다. 한참을 날다보니 눈에 익은 곳이 보였다. 바로 안성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할머니 댁은 집 주위가 모두 논으로 둘러쌓여 있다. 그래서 가끔씩 놀러갈 때면 벼가 자라는 모습을 보기도 했었다. 그때 논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함께 힘들게 일하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는 허리가 편찮으신지 가끔씩 찡그린 얼굴로 허리를 펴시고 이마의 땀도 닦으셨다. 우리가 놀러 갔을 때는 맛있는 음식도 해주시고 놀아주시기만 하셨는데, 저렇게 힘들게 일하고 계셨다니.. 그때 밥풀이가 말했다.

 

“너 내가 어떻게 네 입속에 들어갈 수 있는지 생각해 봤니? 내가 어떻게 생기게 되고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 지는지 알고 있어?”

나는 밥풀이가 왠지 잘난체 하며 날 무시하는 것 같아 대충 대답했다.

“나도 알고 있거든! 사회시간에 다 배웠다구!”

 

하지만 그건 절말 대충 한 대답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그 동안 하찮게 생각하던 밥 한 숟가락! 그 숟가락은 봄부터 가을까지 긴 시간동안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농부들의 정성이고 땀방울인 것이다. 지난 여름 태풍 때문에 쓰러진 벼를 세우러 논에 나가신다던 할아버지, 추수한 다음 떨어진 벼이삭을 소쿠리에 하나하나 주우시던 할머니. 그 때는 왜 그러시는지 잘 몰랐던 그 정성을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대화에서 알 수 있었다.

 

“할멈, 허리도 아픈데 그만 들어가.”

“에휴, 됐어요. 우리 손주들 입에 들어갈 귀한 쌀인데 내손으로 보살펴야죠”

나는 손등 위에서 나를 보고 있는 작은 밥풀이에게 몹시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엄마에게 맨날 밥이냐고 짜증 부렸던 것도, 밥보다 빵이 더 좋다고 우겼던 것도 모두 말이다.

 

“밥풀이야, 내가 그동안 너를 무시한 것 같아서 많이 속상했겠구나. 네가 싫어서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잘 몰라서 그랬던 거야. 이젠 네가 얼마나 귀한 보물인지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꼭 잘 먹을 거야. 밥풀이야 고마워 네 덕분에 많은 걸 깨달았어. 정말 고마워!”

“그래?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다니 나도 기분 좋은걸! 그럼 다시 집으로 가자!”

"뭐? 그럼 우리 지금까지 하늘을 날고 있었던 거야? 으악!“

 

갑자기 엄마가 나를 흔들어 깨우셨다.

“얘! 채린아! 무슨 애가 밥을 먹다가 꿈을 꾸니?”

세상에 꿈이었다니... 아무튼 이게 꿈이든 아니든 난 내 손등 위의 밥풀을 보며 미소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식탁 위에 있는 라면과 밥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저 밥만 먹을래요!”

 

그러자 엄마께서는

“아니 언제는 라면 먹는다고 끊여 달라고 해 놓고선 밥만 먹겠다니!”

라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엄마 죄송해요. 라면은 엄마가 드세요. 저는 밥만 먹을래요. 밥이 얼마나 귀한지 아세요? 아참 그리고 앞으로는 아침에 일찍 깨워주세요. 아침밥 먹고 학교에 가야 하니까요. 아셨죠? 꼭이요!”

 

내가 이렇게 말씀드리자 엄마께서는 눈이 동그래지셨다.

“왠일이야! 너 무슨 일 있었니?”

히히! 일이 있기는 있었죠. 바로 나와 밥풀이와의 여행! 하지만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에요. 쉿! 

 

 

쉿! 우리 둘만의 비밀, "밥풀이와의 여행" 재미있지요?

주변에 밥투정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읽어보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