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의 곡물가격과 유가가 동반상승하고 급증하는 식량수요, 심각한 농경지 및 농업용수의 부족, 인구증가, 지구의 이상기후 현상 등으로 세계 식량이 부족되는 식량위기가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식량문제에 대해 일본의 농업전문가 요시다 다케히코(吉田武彦)는「食糧問題ときみたち(식량문제와 여러분들)」이라는 책에서 세계 식량의 생산과 소비 구조를 설명하고, 인류의 위대한 발명인 농업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또한 음식의 중요함과 기아의 심각성을 알고 앞으로의 미래를 위한 식량문제를 생각해본다. (농촌진흥청 기술경영과 위태석 박사가 요약번역 하였음)
굶주리는 세계
1980년 세계적인 이상기후로 각국의 농작물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비참했던 곳은 동아프리카인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등이었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도 그러했다. 패전 후 식량부족은 당연한 결과이지만 냉해, 가뭄, 홍수 등의 재해로 인해 많은 기아가 발생하는 대기근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비참한 기근과 아사는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은 주변국의 침입과 30년 전쟁으로 기아가 발생하고 아일랜드에서는 역병이 유럽전역에 퍼져 인구가 줄고 미국 등으로의 이주가 늘어났다. 그렇다면 기아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곡물이나 감자 등 그 나라에서 주식인 식량이 부족하게 되어 공급이 최저필요량에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아에 이르기까지의 식량부족이 나타나는 원인에는 크게 두 가지, 이상기후와 전쟁이다.
아프리카는 장기간의 심한 가뭄으로 경지와 방목을 위한 초원이 사막화가 되어 사막의 확대가 세계적인 문제로도 떠오르고 있다. 이상기후도 문제이지만 인간의 영위가 토지를 황폐하게 하고 기아를 격화시키고 있다. 전쟁 또한 인간이 일으켜 군수생산이 최우선이 되고 농업과 농촌이 파괴된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도 일단 파괴된 식량 생산을 다시 원래대로 회복시키는 것은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상기후와 전쟁이 반드시 대규모의 기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나 개인의 경제력이 있다면 말이다. 따라서 식량부족이나 기아는 개발이 늦은 개도국에서 빈발하는 것은 인구의 증가가 빨라 식량의 생산이 인구수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발명 = 농업
농업은 어디서 어떻게 발명된 것일까? 농업의 발생은「신석기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간의 생활에 대혁명을 불러일으킨 대사건으로 많은 학자들이 농업의 기원을 추리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①농업이나 식물개량은 식량부족이 장기간 지속되거나 빈곤 속에서 고민하다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쾌적하고 여유를 가진 생활 속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발생된 것이다. 따라서 ②재배사육의 기원지는 매우 다양한 동식물이 있는 지역이다. 이러한 장소는 지형적․지질적․기후도 다양성을 지닌 토지라는 의미이다. ③농업의 발명자는 농업상 실험이 용이한 상황에 있었다. 칼을 제조하는 수렵생활자가 아닌 도끼를 사용한 산림거주자로 추정된다.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동식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진보적인 어로 민족으로 결론지어지고 이런 조건에 맞는 곳을 찾아보면 동아시아로 추려진다.
동아시아에서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 또는 1만5천년 전에 생긴 영양번식법에 의한 경지가 세계농업의 시초였다는 설이 많다. 농업의 기원은 이렇듯 막연하지만 한사람의 천재가 갑자기 발명하거나 어디서 배운 것이 아닌 나무의 열매나 식물을 오랜 기간 채집생활을 하면서 식용으로 가능한 야생식물의 성질을 숙지하고 여러 경험을 거쳐 최후에 재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농업이 인류역사상 획기적인 위대한 발명이라고 하는 것은 작물을 개발함과 동시에 토지를 경작하는 것을 알았다는 점이다. 세계 최초의 농업은 원시적인 화전(焼畑)농업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수확을 많이 얻지 못해, 농업이 오리엔트의 초원지방에 진출할 무렵에 쟁기가 발명되었다. 그 후 더욱 발전된 것이 가축화된 소를 이용해 밭을 갈게 되고 토지를 경작하는 농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원시농업에 대해서 최초의 기술혁신이 오리엔트에서 발생되었다. 토지의 측량이 필요해 숫자가 발명되고 강의 범람을 예측하기 위해 정밀한 달력이 요구되어 천문학이 탄생했다. 농업을 일으킨 기술혁신이 기원전 3000년경, 세계최초의 문자를 가진 위대한 고대 문명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개화시킨 원동력이 된 것이다.
식량을 만들다
쌀, 밀과 함께 세계의 3대 곡물 중 하나로 옥수수가 있다. 옥수수는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 인디오의 손에 의해 개발된 작물이다. 남북 아메리카의 인디오는 우수한 작물 개발자로 옥수수 외에도 감자, 고구마, 호박, 토마토 등 현재 우리들의 식생활이 얼마나 그들의 은혜를 입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동아시아가 세계의 쌀의 고장이 되고 있는 것은 강우량이 많고 벼농사에 필요한 물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인도부터 일본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비를 품은 계절풍이 발생하는 것은 히말라야․티베트 산지가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는 세계에서도 인구 밀집이 높은 지대이다. 그 인구를 지탱해주는 것은 논이 풍부한 생산력이지만 동남아시아의 벼농사 실정은 증가하는 인구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전에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은 쌀 수출국이었지만 현재 수출이 가능한 나라는 태국뿐이다. 21세기 예측이 경고하는 것처럼 동남아시아의 식량문제는 심각하다. 태국의 벼농사에도 제대로 된 기술을 도입한다면 쌀의 증산에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일본에서 하고 있는 벼농사는 동남아시아와 많은 차이가 있다. 흙탕물에 잠겨 손으로 심는 모내기 풍경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1960년, 이제까지 어려웠다고 느꼈던 쌀의 국내자급이 어느 정도 전망이 보였고 그 쯤 일본의 공업이 급 발전하기 시작, 농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공장으로 몰렸다. 농촌은 인력부족이 되어 기계화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또한 계란과 고기 등 식량이 풍부해지면서 일본인의 식생활이 변하고 쌀의 소비가 줄어들게 되었다. 1970년 일본정부는 쌀농사를 제한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생산이 늘었다. 그러나 넘칠 정도로 생산되는 것은 쌀 뿐으로 그 외의 식량인 밀, 콩, 사료곡물은 거의 대부분 해외 수입이다. 일본은 매년 엄청난 량의 식량을 미국, 캐나다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미래의 세계와 식량
1970년 식량부족에 고민하는 개도국의 농업에 밝은 희망을 주는 녹색혁명 작물이 발명되었다. 기적의 쌀이라고 불리는 IR8을 시작으로 수량이 높은 벼나 밀 품종을 계속해서 만들기 시작했다. 고수품종의 출현으로 식량문제의 해결방안이 보이는 듯 했지만 비료와 관개용수를 필요로 하는 녹색혁명 작물은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었던 개도국에서 식량 증산에 제한된 효과를 나타냈다. 식량위기와 동시에 발생한 석유파동은 비료가격을 인상시켜 개도국의 녹색혁명 작물 재배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1972년 세계적인 이상기후로 흉작이 일어난 미국의 곡물 가격은 점점 오르고 특히 대두의 가격은 세배로 뛰었다. 미국의 물가상승과 함께 시민의 생활은 급격히 어려워졌다. 결국 대두의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가 내려졌으며 그 당시 일본에서는 점포에 두부가 없어지고 기타 식료품의 가격이 크게 오르는 등 크나큰 소동이 있었다. 국민은 자신의 식생활이 얼마나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꼈으며 가능하면 우리들의 식량을 자국생산을 하자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식량 불평등이 예측되는 가운데 군사비를 줄이고 조금이라도 국내 생산을 높이고 수입을 줄이는 것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미래의 세계 평화, 특히 개도국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한 책임이 아닐까 생각된다. 식량문제는 수요와 공급 모두에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이다. 교육 및 홍보를 통하여 저소득 국가에서의 인구증가를 억제하여 수요 증가를 조절하고 경작지의 규모를 유지하고 품종 개발 등을 통하여 식량 생산을 증가시켜야 할 것이다.
'농업과 식량 > 식량안보 대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즈베키스탄 농업투자환경 조사 (0) | 2009.06.14 |
---|---|
'식량위기 다시 오나' KBS1R 인터뷰 (0) | 2009.06.10 |
일본,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농업 선택 (0) | 2009.03.18 |
중국·곡물메이저 불붙은 식량전쟁 (0) | 2009.02.23 |
식량안보를 위한 해외식량기지 확보의 필요성 (0) | 2009.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