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식량/식량안보 대응

세계 식량파동 또 오는가? (고영곤)

곳간지기1 2008. 3. 6. 14:12

"세계 식량파동 또 오는가?"

GSnJ 이사 고영곤(농협대 학장)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해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1970년대 초반, 시사주간지 〈타임〉은 마가복음에 나오는 이 성경구절로 ‘세계 식량위기’ 특집기사의 첫머리를 장식했다. 당시의 암담했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72년 세계적인 흉작과 국제 유가의 급등으로 주요 곡물 수출국들은 수출을 대폭 규제했다. 곡물가격은 2~3년 사이에 2~3배나 뛰었으며, 식량무기화·식량안보 등의 용어가 세계적인 화두였다.

 

  최근의 국제 곡물 수급동향은 당시의 암울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곡물가격 또한 지난 1~2년 사이 급등했다. 유채 등 유지작물가격도 대폭 올라 국제곡물 시세는 최근 20~30년 이래 최고 수준이며, 재고량 또한 35년 만에 최악의 상태다. 지난해 인도·멕시코·예멘·아르헨티나·이탈리아·러시아 등의 국가에서는 식품가격이 정치·사회적인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기까지 했다.

  세계 제2의 쌀 수출국 베트남은 지난 7월 신규 수출 계약을 중단했고, 세계 3위의 쌀 수출국 인도 역시 쌀과 밀의 수출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세계 3위의 밀 수출국이자 세계 5위의 보리 수출국인 러시아도 이들 품목에 각각 10%와 30%의 수출관세를 부과했으며, 우크라이나도 수출 물량을 대폭 줄이는 수출할당제를 도입했다. 아르헨티나도 이에 질세라 밀·옥수수·콩 등에 부과하는 수출관세를 대폭 인상했고, 중국 또한 지난해 말 84개 곡물에 대해 수출부가가치세 환급을 폐지한 데 이어, 올해부터는 농산물 및 가공품 57개 품목에 5~25%의 수출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곡물 수출국들이 이제는 외화획득보다는 자국의 공급량 확보와 식품가격 안정에 주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곡물 수출국들의 이런 조치는 국제 곡물 시세를 끌어올리는 요인인 동시에 수입국 입장에서는 돈을 주고도 물량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불안감마저 주기에 충분하다.

 

  최근 국내외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식량위기 도래 가능성을 거듭 경고하고 나섰다. 그 이유로 첫째, 세계인구의 40%에 육박하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으로 육류 소비가 늘면서 사료곡물 수요가 급증하는 점을 든다. 둘째, 막대한 물량의 곡물이 바이오에너지 원료로 전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2007~2008 양곡연도 중 약 8,000만t의 옥수수가 바이오에탄올 생산에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우리나라 연간 수입량의 10배 수준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셋째, 세계적인 기상이변으로 흉작이 속출하고 기름값 상승으로 농산물 생산비와 수송비도 대폭 늘어나고 있다.

 

  곡물가격 상승이 유휴농지의 활용도를 높이고 기술 수준 향상을 앞당겨 가격안정을 회복하리라는 낙관적인 견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국제 곡물시세의 고공 행진은 당분간 불가피해 보인다. 더욱이 매년 1,500만t 가까운 곡물을 수입하는 식량자급률 30% 미만의 우리나라로서는 이러한 현실을 심각하게 직시해야 한다. 그동안 환율하락이 그나마 곡물 수입가격 급등을 다소 상쇄해줬지만 그다지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시대, 새해 벽두부터 새삼스레 식량무기화·식량안보 등의 말뜻을 곰곰이 되새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 2008. 01. 30 <농민신문>에 실린 GSnJ 이사 고영곤 농협대 학장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