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강으로 배가 들어오던 시절 양화진은 한양의 관문이었지요.
천주 믿는 성도들이 부지기수 목베임 당한 뒤로 절두산이라 불렸지요.
1885년 선교사로 들어와 제중원 의사로 고종의 시의였던 헤론이 죽자,
한양도성에 시신을 매장할 수 없는 규율에 따라 양화진에 묻혔다네요.
우리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묘원이 되었지요.
구한말 쇄국정책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지내던 조선에 일본이 들어와
강제로 조약을 체결하고 그 후로 미국과 서양 열강이 밀고 들어왔지요.
외세침탈로 풍전등화의 상황 조선에 선교사들은 희망의 빛이 되었지요.
어려운 여건에서 학교와 병원, 차츰 교회도 세워 복음이 확산되었지요.
우리 위해 목숨바친 선교사들 묘원을 전북노회원들과 함께 참배했네요.
마포구 합정역으로 접근하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참배(9월 5일)
양화진에는 우리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친 선교사와 그 가족 145명이 안장되어 있다.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억눌린 한국인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영국 언론인 베델의 묘비
지금은 잘 관리되고 있지만 전쟁의 화마로 부서진 비석들도 많아요.
결핵퇴치 사업에 헌신했던 셔우드홀 선생 공적비 (6명의 가족이 합장)
배재학당 학당장으로 일하는 등 40년간 헌신한 교육선교사 벙커 : 배재동창회 추모비
이화학당 설립으로 근대 여성교육의 선구자였던 스크랜턴 대부인 가족묘원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언더우드와 함께 제물포항에 입항해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 기념비
아펜젤러는 배재학당과 정동교회를 설립하고 17년 사역하다 성경번역 회의차 목포로 가던 중 선박사고로 순직
지난 5월 배재학당 46년 후배들을 위한 1일교사로 함께 했지만 다시 한번 기념사진(본인은 배재 91회 졸업생)
"우리는 부활절 아침 이곳에 왔습니다. 그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옵소서" - 1885년 4월 5일 제물포에 상륙하셨던 아펜젤러의 첫 기도
장로교 선교사로 아펜젤러(감리교)와 함께 내한했던 언더우드 선교사 일가 7명의 안식처
1893년 한국에 들어온 캐나다 북장로회 의료선교사 에비슨, 세브란스 병원과 의학교 설립
외국인선교사 자녀들의 묘비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외국인 선교사들의 묘역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 약도 및 개요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 기념교회와 선교사들의 삶을 기리고 재조명하는 양화진홀
구한말 풍전등화의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선교사가 들어오기 3년 전에 먼저 한글성경 준비
우리나라 근대의학 발전에 기여한 의료선교사들의 청진기 가방과 의학저서
개방의 시작이 되었던 구한말 1800년대 후반 선교의 역사
구한말 풍전등화의 위기상황이던 조선에 선교사들이 복음들고 들어와,
가르치고 계몽하고 국제사회에 알리고...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하셨지요.
양화진 홈페이지 www.yanghwajin.net 주소: 서울 마포구 합정동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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