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인류의 미래를 생각한다 [박평식]
미국의 35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는 농업을 공부한 적이 없었지만 지혜로운 말을 남겼다. "우리 경제에 있어서 오로지 농민만이 물건을 살 때에는 소매 값에 사고, 그가 생산한 걸 팔 때는 도매 값에 팔며, 물건을 살 때도 팔 때도 운임을 지불한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농산물 자체의 생산액은 비록 국민총생산의 작은 부분을 차지할지라도 농업이 파생시키는 효과는 매우 큼을 뜻한다. 먹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농업과 식량을 재화의 측면으로만 따질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에 「바나나 제국의 몰락(롭 던 지음)」이라는 책을 읽었다. ‘풍요로운 식탁은 어떻게 미래식량을 위협하는가’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열대지역에 흔한 바나나는 신기한 음식으로, 노랗고 달며 껍질은 쉽게 까진다. 맛도 있고 요즘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매력적인 별미과일로, (필자도 아프리카 식량문제 지원을 위해 DR콩고 KOPIA센터 소장으로 파견근무 갔을 때에 많이 먹었다). 하지만 달콤한 바나나 맛 뒤에 흐르는 사연은 복잡한 인류의 역사가 담겨 있다.
1950년대 중앙아메리카는 당시 소비되던 세계의 바나나 대부분을 수출했다. 특히 과테말라는 거대기업이 운영하는 바나나 농장의 핵심지역이었다. 거대기업이 바나나 농장을 운영한 방식은 단순했다. 크기와 맛이 똑같은 예측 가능한 작물, 상업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재배하는 것이었다. 꺾꽂이로 번식되는 클론 바나나 재배방식은 경제적 관점에서 탁월했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바나나 하나를 죽일 수 있는 어떤 병원체가 바나나 전체를 다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업적 거대기업은 이윤추구에만 힘을 쏟았다.
결국 1890년에 시작된 파나마병은 바나나 농장을 휩쓸었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과테말라의 바나나 농장은 점차 황폐화되었고, 주로 먹던 바나나 품종인 그로미셸은 결국 멸종 위기에 처해 식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거대기업은 그들의 방식을 바꾸지 않았고, 그들은 또다시 단일 품종인 캐번디시를 같은 방식으로 경작해 부를 축적했다. 파나마병을 이길 수 있던 캐번디시가 새로 진화한 신종 파나마병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인류는 아직 캐번디시를 대체할 품종을 개발하지 못했는데, 신종 파나마병이 모든 바나나 농장을 삼키고 나면, 더 이상 바나나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거대기업의 욕심이 낳은 이런 사태가 결코 바나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1846년 무렵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전유럽으로 퍼진 감자 역병의 사례는 더 심각했다. 우리는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너무 잘 먹어서 비만과 성인병을 걱정하고, 당장 눈앞에서 버려지는 음식이 많다. 게다가 회의론자들은 식량부족 사태가 오더라도 선진국은 크게 영향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프리카 등 그들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지역에서 특정 작물이 사라지면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현재 주곡인 쌀을 자급하고 있어 심각한 식량난을 겪지는 않고 있지만, 밀·콩·옥수수 등은 수입곡물에 의존한다. 식량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농업의 미래는 인류의 미래와 직결된다. 따라서 농업의 미래가 우리들 손에 달려 있다. 작물을 육종하고 재배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자들이 계속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보고 정부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거대 기업이 만들어놓은 입맛에서 벗어나 가까운 농장에서 다양한 작물을 구입하는 것도 우리다. 농업에 첨단과학 도입도 중요하지만 소규모 농부들의 전통방식이야말로 지구에서 생존하는 무한한 생태계와 인류를 제대로 연결하는 일이다. 식량을 덜 낭비하고 더 소중히 여기며, 우리가 버리는 음식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인류의 공생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여성신문 2018. 8.13. 칼럼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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