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식량/우리 쌀 이야기

'주림을 고치는 데는 밥이 으뜸' [조병철]

곳간지기1 2013. 11. 15. 09:16

 

뉴질랜드 출장갔을 때 친절하게 가이드를 해줬던 조병철 선생이 칼럼을 하나 보내왔다.

이민생활에 적적할 때 읽어보라고 가져다 준 책을 읽고 밥에 대한 칼럼을 하나 써보냈다.

농촌진흥청에서 지도관으로 근무하다 뜻한 바 있어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갔는데,

원예전문가로 거기에서도 '농촌여성신문' 칼럼니스트로 가끔씩 좋은 글을 쓰고 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아시안마트에서 미국쌀과 한국쌀이 함께 판매되고 있다.

 

 

주림을 고치는 데는 밥이 으뜸

조병철 / 원예 컨설턴트 

 

 「세상에서 몸에 좋다는 복령, 인삼, 구기자 같은 세 가지 약을 먹고 나서 다시 음식을 먹지 못한지 백일만에 숨결이 가빠 곧 죽게 되었을 때, 이웃집 할멈이 와서 보곤,그대 병은 주림에서 생긴 것이라, 이를 고치는 데는 밥이 으뜸인즉 이 병은 오곡(五穀)이 아니고선 치료하기 어렵네.’ 하고 탄식을 거듭하기에 나는 그제야 깨닫고, 기름진 쌀로 밥을 지어 먹고는 죽음을 면했으니. 이로 보아 불사약(不死藥) 치고는 밥보다 더 좋은 게 없음을 알았소. 나는 아침이면 한 그릇 저녁이면 또 한 그릇 먹고, 이제 벌써 일흔 살이 넘도록 살았소.민담 민영감의 익살에 나오는 이야기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공부할 때 얘기다. 고향에 들르면 으레 쌀 포대를 버스에 싣고 가야 했다. 새끼줄로 단단히 동여맸지만 몇번 추스르면 헐렁해져 아주 촌스러웠다. 그 당시에는 쌀 포대를 일반버스에 싣고 가는 것이 무척 창피했지만, 달리 방안이 없었다. 좀 머리가 커지면서 고향에서 쌀을 화물택배로 부치곤 서울에서 찾는 방법을 이용했다. 화물요금과 택시비를 합치면 서울에서 쌀을 사먹는 게 유리하다는 약삭빠른 계산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님 얼굴을 보면서 참아냈다. 그리고 객지생활을 계속하면서 작은 차를 마련했을 때도 트렁크에는 어김없이 쌀자루를 실어야 했다. ‘내가 지은 농산데 니들이 가져다 먹지 않으면 누가 먹냐?’ 당신께서는 더 이상 농사일을 하지 못할 때까지 그렇게 자식의 쌀독을 챙기셨다. 그 후로 쌀을 사먹을 때는 물이 맑은 곳에서 생산되는 쌀을 찾았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것은 대부분 아시안 사람들이다. 여름철에 장마기간이 길어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어야만 벼농사가 잘 된다. 쌀은 이런 지역 기후풍토의 산물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벼농사의 기원은 인류의 역사문화와 같이 한다. 한식 세계화를 추진하는 전문가는 쌀은 먹기 좋고, 소화가 잘되는 완전식품에 가깝다고 자랑한다. 또한 낟알 채로 조리해서 먹게 되니 소화시간이 길어 포만감이 오래간다. 그만큼 배고픔을 달래주어 비만으로 가는 길을 막아준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인의 쌀에 대한 애착은 세계 어느 민족에 뒤지지 않는다.

 

  뉴질랜드는 지중해성 기후로 쌀이 생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은 호주 쌀, 미국 쌀을 찾게 된다. 그 밖에도 시장에는 한국산, 일본산 같은 우리와 아주 친숙한 쌀이 있는가 하면, 태국산, 인도산, 스페인산, 남미산 같은 우리 체질에 맞지 않는 쌀도 발견된다. 지리적 여건으로 호주에서 수입된 쌀을 우선 찾게 되지만, 호주는 강물을 이용해서 벼를 재배한다. 그러다 보니 물이 부족한 해는 벼농사를 계속할 수가 없다. 자연히 쌀의 품질도 들쭉날쭉 해서 한국인의 입맛에는 믿을 수 없는 쌀로 취급된다. 또한 지역의 기후에 적합한 작물인 포도와 경쟁을 하고 있으며, 기후변화로 물 부족이 심화되고 있어 얼마나 더 벼를 계속 재배할지는 의문이다.

 

  오클랜드에서는 미국 쌀에 더 친숙해져 있다. ‘칼로스 쌀로 각인된 특별한 쌀의 품질관리에 빠져든 것이다. 벼를 바싹 말려 찧어서 유통기간을 길게 가져간다. 그들은 자신들이 먹기 위해서 벼를 재배하는 게 아니라 수출을 목표로 상업적으로 쌀을 생산한다. 게다가 상표전략도 치밀해서 미국에서 생산해서 한국어로 된 라벨로 수출하고 있어 챙겨보지 않는 사람들은 한국산으로 혼동하기 십상이다. 현재는 값이 저렴해서 인기를 더하지만, 만약 쌀이 부족한 어려운 상황에도 그런 가격으로 공급할지는 의문이다. 또한 벼를 수확한 후에 유통기간을 늘리려고 다른 처리를 하지 않나 하는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현재는 한국산과 일본산의 쌀은 품질은 만족할 수 있으나 가격이 부담스럽다. 호주 쌀은 물 사정에 따라 공급이 불안전하다. 또한 미국 쌀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곡물 메이저의 횡포가 도사리고 있어 위태위태하다. 우리는 어떤 먹거리보다 우수한 을 주식으로 하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되지만, 우리의 밥상이 언제까지나 안전할른지? 그리고 품질관리를 아주 잘해 낸다고 선전하는 브랜드 쌀들은 그들의 손에 품질관리가 맡겨져 있어 언제나 눈여겨 봐야할 것 같다.

 

신농씨(神農氏)는 온갖 풀을 다 맛보고 오곡을 선정했다고 전한다. 쌀뿐 아니라 보리, 조, 콩, 기장으로도 밥을 짓는다. 배고픔을 경험한 세대는 흰쌀밥에 대한 신앙적 믿음이 대단해서 건강을 잃을 때쯤에서야 오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배고픔이 뭔지 잘 모르는 세대는 쌀밥에 들어 간 콩을 모조리 골라낸다. 손수 벼농사를 짓던 부모세대는 자식의 쌀독을 평생 걱정했는데, 오곡의 맛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세대들의 밥상은 누가 챙겨줘야 하는지?

 

[참고] 최태응. '풍자와 설화의 한국사'. 2009.  October 25, 2013. BJ Enterprise, New Zea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