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하늘목장 칼럼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곳간지기1 2010. 2. 24. 22:32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하늘목장]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으니..

온 대지가..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지고, 모든 생명의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고 혹독한, 기근과 가뭄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삶도[영성도], 어쩌면.. 이와 같을 수 있다.

교회는 다니지만, 예배는 드리고, 주의 일에 헌신하고, 기도한다고 열정을 다하지만..

어쩐지.. 하나님의 임재[실재]가 없은지, 이미.. 수년이 지난 성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기도는 하지만.. 벽을 치는 것과 같고, 말씀은 듣지만.. 아무런 감동도 도전도 없고, 찬송은 부르지만.. 그저 종달새의 노래 같고...

봉사는 하지만, 기쁨은 사라진지 오래고.. 성경은 읽지만, 지루하기 그지없고.. 하루 종일, 기독교 TV를 보지만.. 습관적, 일상이 된지 오래다.

지독한, 영적 가뭄이다.


겉으로야.. 종교와, 형식과, 지식과, 테크닉으로, 잘 포장되어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는, 이미 감격도, 야성도, 기쁨도, 평안도, 주체할 수 없던 눈물도 마르고, 곪아 터져 돌덩이가..

어언.. 3년 6개월 된 성도, 목회자, 교회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니, 어쩌면.. 너무 오래 동안, 하나님의 임재 없이 가물었기에..

이제.. 그런 삶에 익숙하고 동화되어, 무감각해져 의기의식 조차.. 느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른다.

하루만 물을 못 마셔도, 입술이 마르고 목이 타들어 가는데, 하나님의 임재 없이 보낸 나날들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이 지독한 가뭄 문제를 앞에 놓고, 갈멜산으로 올라가기 전에.. 아합왕께 이렇게 말한다.

"왕이여,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아직.. 하늘이 청청하고, 비 한방울 떨어지지 않는데.. 엘리야는, 미리 왕께 선포한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믿음과, 임재의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선포이다.

아합은.. 세상을 의미하기도 하고, 문제나 사단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엘리야는.. 세상을 향하여, 그리고 문제를 향하여, 마귀를 향하여 주눅 들지 않았다.

엘리야는.. 현상이나 감각에, 의존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신뢰했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다.

만일에.. 엘리야가.. 왕 앞에서, 큰 비의 소리가 있다고 선포해 놓고, 비가 오지 않으면.. 엘리야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고..

큰 굴욕과, 모욕을 당할 수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선포할 수 있는 동력은.. 절대믿음이었다.


믿음이란.. 큰 소리를 지르고,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은,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입술과 혀의 권세를 주셨다.

우리의 할일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미, 2천년 전에..

주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죽음, 죄, 가난, 질병, 실패, 상처..]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다 이루셨다고",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이루신 일들을 선포하고 기도함으로, 우리의 것으로 얻을 수 있다.

엘리야는.. 하늘을 열고 닫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엘리야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야고보서에서 말씀하고 있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 했다.


그렇다면.. 엘리야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와 무엇이 다를까?

엘리야는.. 기도 전에, 선포하는 능력을 활용했다.

아직, 비가 오지 않지만..

불을 내리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미리 선포함으로..

마귀의 권세를 꺾으시고, 사단의 결박을 푼 것이다.


우리는 아직, 몸이 아플 수 있다.

그러나 병 낫기 위해 기도하기 전에, 불신자들과 마귀에게 할말이 있다.

"나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나는 이미 건강해 지고 있다."고


우리는 여전히, 가난하다.

그러나, 부요함을 구하기 전에..

"나는 부요하다."

나에게도 큰 돈이 생긴다."

나는 부자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크게 할 것이다"고


우리는 여전히, 실패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성공을 구하기 전에..

"나는 성공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우리는 날마다.. 기도하기 전에, 이렇게 외치며 선포해야 한다.


"나는,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이다.

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갈 것이다.

나는, 좋은 배우자를 만날 것이다.

나는, 좋은 가정을 이룰 것이다.

내 남편은, 좋은 남편이다.

내 아내는, 현모양처이다.

내 자녀들은, 야곱의 축복을 받는다."고 말이다.


이건.. 신념적 고백이나, 긍정적인 사고로, 최면을 거는 것과..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이와 같은 고백적 선포는.. 어렵고, 힘든 일이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은.. 감각에 의존되어 있고, 보여지는 것만.. 믿는데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직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 소리도 안들리고, 아무것도 안 잡히는데..

어떻게.. 있다고 말하고, 된다고 말하고, 가능하다고 선포하겠는가?

이때 마귀는.. 우리의 생각 속에 들어와, 미혹한다.

"그런다고, 되겠느냐?"

"아직.. 비 한방울 떨어지지도 않는데, 어찌 큰 비가 온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건, 미친 짓이다"


그렇다.

그건 분명, 미친 짓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선포의 능력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엘리야의 기도를 해야 한다.

엘리야는 선포한 후에..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렇다.

힘들고 피곤한 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가.. 꼭대기로 올라오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응답 받는 기도를 위해서는, 성소로 나와야 한다.


엘리야의 기도의 패턴은..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꿇어 엎드린다"는 뜻은 몇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항복이다.

이제, 나의 수단 노력으로는..

가뭄의 문제, 가난의 문제, 자녀의 문제, 질병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결혼의 문제, 직장의 문제를..

어찌할 수 없다는, 절대무능의 표현이다.

"하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시며, 대책이시며, 길이시며, 해답이시라"는 고백이다.

나는 절대 무능한 존재이며, 나는 구제불능한 사람이라는.. 고백의 절정이다.


또 다른 의미는, 낮은 마음이다.

우리는 누구에게 무엇을 부탁할 때, 허리를 굽히거나 머리를 숙인다.

겸손의, 의미이다.


또 다른 의미는.. 간절함의 표현이다.

애절함의 극치이다.

통절함의 절정이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면..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예배당에 의자가 없었다.

그냥 마루 바닥에서, 무릎 꿇고.. 엘리야처럼 기도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는 응답도 많았고, 기적도 일어났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기도는, 너무 우아하고 고상함만 추구하는 면이 없지 않다.

우리도.. 엘리야를 통해, 선포의 능력과 기도의 자세를 배워야 할 것이다.


끝으로.. 가장 큰 축복과 응답은, "임재 가운데 머무름"이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돈도 있고, 건강도 있고, 형통함도 있고, 기적도 있다.

임재 없는 기적과, 응답과, 은사와, 형통은.. 기복에 불과하며 교만에 빠지게 할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본질과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 그분을 구하는 것"이다.

기도를 이용하여.. 내 만족을 채우려 하고, 신앙을 빙자하여.. 내 욕심을 이루려 함은, 예수 무당이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며..

가뭄이 사라지고, 큰 비가 내림은..

메마른 우리의 영혼에..성령의 단비, 복된 장마비, 늦은 비인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