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의 사소한 실수로 아름답던 서해안이 기름범벅이 되고, 갯벌의 각종 어패류가 폐사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오염된 태안바다의 회복을 위해 교회가 앞장서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자원봉사행렬이 줄을 이어 조금씩 제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 우리 교회에서도 청년들과 안수집사 35명이 만리포 부근의 포구에 가서 기름 제거작업에 조그만 힘을 보탰습니다. 바다에 시커멓게 떠다니는 원유찌꺼기를 흡착포에 적셔 걷어내고, 모래사장에 덮인 타르 덩어리를 손으로 걷어내고, 바위에 묻어있는 기름을 헌옷 등으로 닦아내는 작업을 하고 왔습니다(사진).
오는 길에 만리포에 들렀는데 TV에서 보던 양동이로 기름을 퍼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외관상으로는 모래사장과 바다물이 한결 깨끗해진 것을 보고 적지않게 놀랐습니다. 손으로 하는 방제작업으로 그 넓은 바다를 어떻게 되살릴까 했던 의구심이 사라졌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아름다운 자원봉사의 손길이 자연을 되살리는데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새삼 목격했습니다.
태안바다 되살리기 봉사활동은 일회성으로 그칠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지속해 나갔으면 합니다. 선교단체와 기관별로 자발적인 참여자를 모집해 가능하면 자주(당분간 매주 토요일) 갔으면 합니다. 한달이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크게 어려운 일은 많지 않고 조그만 손길이 계속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잘 보존하고 가꾸는 일에 교회가 적극 동참하는 것이 옳은 일로 생각됩니다.
다음에 덧붙인 국민일보 기사를 보면 현지 농촌교회의 처절한 몸부림과 교회의 참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교회의 영향력이 점점 쇠퇴하고 안좋은 이미지로 비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야말로 좋은 일에 동참할 기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름과의 사투 한달… 희망을 보았습니다” [국민일보 2008.1.7. 29면] “지금 우리가 겪는 고난은 분명 하나님의 축복으로 나아가는 통로임을 믿습니다.” 태안 의항교회(이광희 목사)의 신성오(51·여) 사모는 지난 한달을 돌이켜보면 하루 하루가 기적의 날들이었다. 지난달 7일 기름 유출사고가 발생한 이래 꼬박 한달 동안 ‘자원봉사자들의 봉사자’로 눈코 뜰새 없이 활동하면서 그녀는 한국과 한국교회의 희망을 보았다.
기름 유출사고로 교회에는 매일 1,0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몰려 발디딜 틈이 없었다. 그 전까지는 매주 70여명의 성도가 모여 예배를 드리던 조용한 어촌교회에 불과했다. 신 사모는 "지금까지 태안을 찾은 전체 자원봉사자 가운데 60% 이상이 교회 성도들"이라며 "이번 사고로 위기 때마다 똘똘 뭉치는 한국교회와 한국인의 저력을 확인했다"고 놀라워했다.
그녀는 교회 성도들과 함께 밀려드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라면과 빵과 음료수를 제공하느라 한달 내내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앓기 시작한 감기 몸살을 여전히 달고 다니지만, "앓아 누울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조금씩 제 색깔을 찾아가는 백사장과 바윗돌을 볼 때마다 힘이 솟기 때문이다.
[ 태안 의항교회 목사 사모의 기름유출사고 후 한달간의 일상기록 ]
“오전 10시쯤 차를 타고 동네 입구를 나서는데 기름 냄새가 차 안 가득 스며들었다. 기름이 새나? 오후에 귀가한 뒤에야 알았다. 오늘 새벽 동네 앞바다에서 선박사고로 원유가 쏟아졌다는 사실을. 저녁 구역 연합예배에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회를 가졌지만 다가올 엄청난 재앙은 아무도 몰랐다.”(2007. 12. 7)
“아침 일찍 주민들이 바다로 몰려나갔다. 밀물과 함께 밀려든 시커먼 기름층이 30㎝ 두께로 온 바다 위를 덮은 것을 보고서야 주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그대로 ‘검은 재앙’이었다. 바다에 온통 검은 아스팔트가 깔린 것 같았다. 주민들은 바가지와 삽을 들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2007. 12. 8)
“기름 유출사고 이후 두 번째 주일을 맞았다. 성도들을 바라보니 패잔병들 같았다. 기름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코가 헐고, 입술이 부르트고, 허리와 다리도 삐걱거리고… . 애처롭기 그지 없었지만 그들은 평안함을 잃지 않았다. 감사한 일이다. 내일이면 또다시 바다로 나가야 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꼭 십자가 군병들 같았다. 주님, 저들의 마음과 육신을 헤아려 주세요.”(2007. 12. 16)
“기적이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길들이 기름을 퍼내고 닦아내더니 백사장의 모래가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지금 한국 교회와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고 있다. 무엇으로 감사해야 할까. 하나님, 이들을 축복해 주소서.”(2007. 12. 30)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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