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남미 파라과이에서 반가운 편지가 날아왔다.
벼육종 전문가로 평생을 연구현장에서 땀흘렸던 양세준 박사가 농촌진흥청에서
올해부터 6개국을 필두로 해외농업 기술개발 및 협력사업을 목적으로 출범시킨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KOPIA)의 가장 먼 임지에서 반가운 소식을 전해 왔다.
거점 센터는 베트남, 미얀마, 우즈베키스탄, 케냐, 브라질 등에 설치되었다.
기술센터가 잘 정착되고 발전하여 한국농업 기술이 지구촌의 식량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국가브랜드 가치제고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건승을 바란다.
* 파라과이 KOPIA 센터의 프로젝트 담당자들과 양세준 소장의 사진이다.
"파라과이 KOPIA 센터에서 양세준 박사가 보내온 편지"
식량과학원 직원 여러분들에게 먼저 안부를 전합니다. 이곳은 남회귀선이 지나는, 우리나라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는 남미의 파라과이입니다. 올 여름에 개설된 농촌진흥청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KOPIA ; Korea Project on International Agriculture) 파라과이 센터입니다.
지난 8월 5일, 30년 넘게 짊어진 연구직 공무원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명예퇴직으로 내려두고, 아파트는 전세를 놓고, 아쉬운 정을 뒤로 한 채 이곳으로 36시간만에 날아왔습니다. 현지 날자는 8월 27일 저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어느 지방 공항보다 작고 아담한 공항을 벗어나자, 필리핀을 능가하는 후덥지근한 더위가 걱정을 더하였습니다.
날씨가 궁금하시죠? 기온교차가 극심한 편으로 봄날이라고 감안하더라도 일간에, 하루 내에도 겨울과 여름이 같이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곳 파라과이 사람들은 항상 준비된 옷을 꺼내 입는 민첩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초봄 날씨답게 춥다고 그러는데, 더운 나라인 줄만 알고 온 중늙은이 삭신에 냉기가 스며들기에 딱 어울리는 날씨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제 변덕스런 9월의 추위가 끝난듯하고 10월을 지나 12월에 가까워지면 아침 9시 이전부터 푹푹 찐다고는 하나, 아직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몸을 내맡길 작정입니다. 사실 하루 저녁에는 생강을 다려 감기약과 같이 먹고 누운 적이 있습니다. 언덕 같은 높이를 산이라고 부르는 이곳 Caacupe에 자라는 소나무의 새순을 보면서 2009년에 두 번 맞는 봄을 견디느라 주인 잘못 만난 몸이 신고식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야 겨우 무선랜으로 읽기만 하고 보내는 글은 모니터에 영어가 나오고 있는 현실을 참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이제는 한글 자판과 모니터를 보면서 독수리처럼 글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엄마가 부탁하면 가까운 상점에 가서 두부나 콩나물을 사왔는데 여기는 쇠고기를 들고 다닌답니다. 일요일, 점심시간이 가까워가는지 담장에 붙여서 지은 옆집 담 너머로 고기 굽는 냄새가 연기를 타고 같이 넘어옵니다. 파라과이 수도인 아순시온에서 동쪽으로 나가는 Ruta II (2번 국도) 50Km 길가에서 집을 구하여 누운 지가 벌써 한달이 지나는 시간입니다. 그 길은 중남미를 지나 미국, 캐나다까지 연결되는 하이웨이로서 이 근방을 다녀보니 노면상태가 양호한 편이지만 기본적으로 2차선입니다. 길이가 20m 넘어 보이는 화물차가 언덕을 오르는 소리가 시끄럽고 월세가 비싸서 다른 곳을 물색중입니다. 아순시온을 빠져나와 경계벽이 있는 4차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통행료를 내고 10분 되기 전 언덕을 오르면 그곳이 Caacupe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오른쪽에 KOPIA 사무실이 있는 농업목축부(MAG) 산하 농업연구국(DIA)의 국립농업연구소(INSTITUTO AGRINOMICO NACIONAL; IAN)입니다. DIA 산하에 1연구소, 7시험장이 있고 IAN이 가장 규모가 큰 편으로 생각됩니다.
오기 전 박대수(성씨가 Valdez) 주한 파라과이 대사가 이야기한 12월의 까꾸페를 보기 전에는 상상이 어렵겠지만, 12월 8일 전에 2~3백만의 사람들이 이곳 교회를 방문한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성인의 고행을 기리는 뜻에서 그 더운 12월의 길을 걸어서만 왔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예전보다는 편한 몸과 마음으로 성지순례를 한다고 하니 물질문명의 덕입니다. 이곳 성당 있는 자리에 성모 마리아가 현신한 곳으로 파라과이뿐 아니라 남미 각 나라에서도 이곳을 그 시기에 찾는다고 합니다.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영험한 천주교의 성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대수 대사가 보여준 그림 안에 있던 라빠쵸나무의 세가지 꽃 중에서 진달래를 닮은 색, 그리고 진노란색의 꽃은 이번에 보았지만 하얀 꽃은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진달래꽃은 오래가고 가장 흔하게 보였고 보기에도 부담이 없었는데, 노란 꽃은 그 화려함처럼 꽃이 빨리 퇴색하는 듯 하였습니다. 그 나무의 재질이 단단하여 비싼 목재로 팔린다고 합니다.
이곳의 흙 색깔은 갈색이지만 빨간색에 가깝습니다, 그 흙을 구워서 만든 기와는 반원형 한가지로, 놓고 그 위에 덮어서 지붕을 덮는 기와가 됩니다. 기와는 모두 밝은 적갈색으로 모든 집의 모양은 같은 게 없지만 지붕만은 똑같습니다, 단지 검은 이끼만이 그 세월을 말해줄 뿐입니다. 그리고 사무실이나 집 모두 형편이 되면 지붕높이 즉 천정이 높습니다, 더위를 피하려는 생활의 지혜의 산물입니다.
거리상으로는 한 시간 거리인데도 수도에 농산물을 포함한 모든 물건이 집중되어있는 정도나 차이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 어릴 때랑 비슷합니다. 심지어는 아순시온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배달은 알아서 하라는 정도입니다. 통신선 확보가 중요한 만큼 서둘렀는데도 한달이 지나서야 겨우 1M의 절반속도로 랜이 연결되고 자주 끊기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학요원 없이 이곳에 도착한 이후 인턴들과 같이 지난달부터 에스파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 쫓아가느라 가랑이 찢어질까 걱정입니다.
지출비용에 대해서도 먼저 계산해 두었다가 대사관의 서버계좌를 이용하고 있는데, 은행에서 현찰로 만불 찾기가 눈치가 보여서 쉽지만은 않습니다. 지난 9월 7일에 도착한 인턴들, 이곳에서는 처음에 그렇게 많은 전문가들이 온다고 알고 있기에 오해를 진정시키는데 많은 설명이 필요하였습니다. 시골 호텔의 반복성과 누추함을 벗어나 중간에 홈스테이나 집을 구하여 자취를 해보려고 시도하였으나 워낙 닳고 닳은 동네라 포기하고 기숙사처럼 호텔을 이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아무리 얇게 베어낸 종이에도 앞면과 뒷면이 존재하는 게 삶 아니겠습니까? 내일부터는 빈약하고 똑같은 빵을 벗어나 나름대로 밥을 해먹으려는 것 같습니다. 이곳 까꾸페에 나와 있는 태권도 가르치는 KOICA 요원도 추석에 같이 집으로 불러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턴들이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 DIA 국장이 “양박사는 딸 여섯에, 아들 둘 거느려서 좋겠네”라는 농담을 건넬 정도입니다. 뚱뚱한 여인네들만 보다가 젊은 한국 여학생들을 보게 되니 귀여운가 봅니다.
머나먼 역사의 오래전부터 같은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끼리야 머나먼 길을 오랜 시간이 걸려 여행하였고 여러 문명이 충돌하면서 우리가 읽은 적이 있던 로마 이야기나 중국의 한나라 그 훨씬 이전부터 인간의 여정이 사실같이 꾸며진 신화로 구전되어 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멀리 나아가 새로운 것을 구하려는 사람의 꿈은 큰물인 바다를 항해하는 기술을 배우고 변하지 않는 별자리와 경험을 말로 전하다가 드디어 문자로 서로간의 소통을 기록하고 남기게 되었으리라 봅니다. 이미 주인이 있던 땅을 고난의 항해 끝에 발견한 땅이라 그 소유권을 인정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단지 문명이라는 아전인수 격의 격차로 약육강식의 제국주의나 식민지시대가 시작된 것이라 봅니다. 당시 서양인은 그들의 종교에서 보듯이 자기들이 믿는 유일신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세계에 머물고 있던 시간이었으리라 봅니다. 지금까지도 변한게 거의 없는 것이 이 세상 돌아가는 판세가 아닌가요?
비료를 주어야 하는 땅은 땅이 아니라는 나라, 18세 이상 농사를 희망하는 사람에게는 10ha의 땅이 주어진다는 나라, 거대한 해외자본에 의하여 경영되는 기업농의 경우 투입되는 농자재, 생산량, 판매에 문제가 없는 나라, 그리고 국가에서 준 땅을 팔아먹고 다시 땅을 요구한다는 landless 농민들의 소요, 60여년간 계속된 독재와 부정부패... 심지어는 누가 높은 자리에 임용되면 주위 자리는 친인척이 자리를 차지한다는 나라, 파라과이의 얼굴입니다.
KOICA처럼 직접 농촌현장이나 원하는 지역사회에 들어가서 대학생시절의 농활보다 경건한 자세로 무엇을 돕는다고 한들 어느 것 하나 지속적으로 연계성을 가진 운동으로 이어지기에는 무리가 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KOPIA처럼 연구소에 입주하여 그들과 같이 연구해 개발된 기술만으로 현장에서 그 작목을 재배하여 지속적인 소득을 보장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주요 연구대상 작물로서 스테비아로 알려진 - 설탕의 300배 되는 감미성분 스테비아사이드를 함유 - 가헤(KaaHee), 참깨, 그리고 벼를 작물로 선정하고, 손을 많이 필요로 하는 원예작물로서 토마토, 양파, 상추 중에서 중요도를 검토하여 결정할 예정입니다. 다행히 봄이라 충분한 검토시간이 필요한 만큼은 주어질 것 같습니다.
기능적인 면에서 검토할 일은 유전자원 및 특성조사를 통한 변이의 이해, 육종과정과 선발기술의 이해, 내병충성과 병해충방제, 다수성이나 고품질 생산을 위한 재배법 그리고 종자 생산문제 등으로 나누어 어느 단계에서 막혀있는지를, 그리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검토할 예정입니다.
남미에 주어지는 원조의 대부분이 이곳 파라과이에 투입되고 있음은 우리 외에도 KOICA 요원, 오래전부터 이곳에 이민촌을 마련한 일본의 JICA 요원, 타이완 파견요원 그리고 선교목적의 봉사단원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채소를 연구하는 건물은 연구소 앞쪽에 일본 국기, 바로 아래에는 타이완 국기가 그려진 연구소가 있지만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공동으로 개발한 기술이 하루빨리 현장에 나가서 소개되고 농민들 스스로가 인정하는 기술로 평가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주 파라과이 김주택 대사의 연구소 방문, 농어부 차관 Senor Halley의 격려방문은 KOPIA 사업에 대한 양국의 기대를 가늠케 하는 일이라 봅니다.
추석 전에 격려차 보내주신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장님의 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객지에서 힘들겠지만, 여러분들이 하는 국제협력 업무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고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숭고한 미션이라는 생각을 하면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주재하는 나라의 농업외교관이라는 생각을 하면 자부심을 느낄 것입니다. 어제 총리실 국무차장 주재 국제협력 회의에 다녀왔습니다. 차장님께서는 "우리나라는 국제협력이 없었다면 발전할 수 없었고, 지금도 국제협력을 하지 않는 한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께서 헌신하시면 그 결과는 대한민국의 브랜드가치로 되돌아옵니다. 힘들더라도 국제협력은 우리나라의 발전에 초석이 되는 숭고한 미션이라는 생각으로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어려움이 있을 적마다 친정을 찾을 것입니다, 미처 전하지 못한 인사를 멀리서나마 전합니다. 부디 많이 도와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항상 열심히 일하시고 웃으면서 주위를 밝히는 사람으로 남으시길 바랍니다.
2009. 10. 6. 파라과이에서 양세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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