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 9

배재학당 설경을 추억의 동영상으로

누구나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있을텐데 교정 영상입니다. 우리가 다녔던 정동교정은 아니지만 고덕동 캠퍼스 설경입니다. 학창시절의 추억이 깃든 장소는 아니지만 기념으로 간직합니다. 설립자 아펜젤러 동상과 교훈비석, 추억의 동관 등은 다 있네요. 배재학당 동문회에서 모교의 설경을 동영상으로 보내주셨네요. 지난 2020년과 2021년 두 해는 코로나19로 역사상 유래없었던 참으로 힘겨운 시절을 보냈고 그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보다 나은 새해를 기대해 봅니다. 2021 눈내린 배재학당 교정 동영상 지난 2년 동안은 코로나19로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 새해에는 물러가고 평범한 일상이 회복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조선의 빛이 된 선교사 아펜젤러의 일생

youtu.be/MPbYhkvnYjM 조선의 빛이 된 아펜젤러 선교사의 생애 아펜젤러 선교사, 그는 진정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조선에 빛이 된 선교사,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아펜젤러 선교사를 소개하는 동영상이 있어 공유합니다. 아펜젤러(1858-1902)는 조선에 온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이자 교육가, 성서 번역가, 위대한 목회자입니다. 그는 1885년 우리나라에 와서 17년간 조선을 위해 희생과 섬김의 삶을 살다 순교했습니다. 배재학당을 세워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교육을 시작하였고, 정동제일교회를 세우고, 일제치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1902년 성서 번역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목포로 가던 중 군산-서천 앞바다에서 해상사고로 순직했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충..

전북노회원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원 참배

오래전 한강으로 배가 들어오던 시절 양화진은 한양의 관문이었지요. 천주 믿는 성도들이 부지기수 목베임 당한 뒤로 절두산이라 불렸지요. 1885년 선교사로 들어와 제중원 의사로 고종의 시의였던 헤론이 죽자, 한양도성에 시신을 매장할 수 없는 규율에 따라 양화진에 묻혔다네요. 우리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묘원이 되었지요. 구한말 쇄국정책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지내던 조선에 일본이 들어와 강제로 조약을 체결하고 그 후로 미국과 서양 열강이 밀고 들어왔지요. 외세침탈로 풍전등화의 상황 조선에 선교사들은 희망의 빛이 되었지요. 어려운 여건에서 학교와 병원, 차츰 교회도 세워 복음이 확산되었지요. 우리 위해 목숨바친 선교사들 묘원을 전북노회원들과 함께 참배했네요. 마포구 합정역으로 접근하는 양..

배재학당의 뿌리를 찾는 배재 역사탐방

1885년 4월 5일 부활절날 미국의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사가 손을 잡고 제물포항(인천)에 내린 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되었다. H.G. 아펜젤러 목사는 배재학당을 세워 교육사업을 먼저 시작하였고, 언더우드 목사는 세브란스 병원을 세워 연세대학교로 발전하게 된다. 배재학당은 정동에서 출발 신교육의 발상지, 신문화의 요람이 되었다. 배재학당 총동창회에서 배재고등학교 신입생을 대상으로 뿌리를 찾는 역사탐방을 여덟번째 수행했는데, 46년 후배들에게 1일 교사로 나섰다. 배재 1학년생 전원이 버스로 학교에서 출발해 현충원에서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독립운동의 전설 지청천 장군, 우리말 연구의 주시경 선생, 독립협회 서재필 선생 등 대선배님들의 묘소를 참배하며 각오를 다진다. 다음으로 양화진에 있..

조선에 온 첫 감리교 선교사 헨리 G.아펜젤러

개방화의 물결 속에서도 꿋꿋이 쇄국정책을 견지하고 있던 은둔의 나라 조선에 1885년 4월 5일 부활절날 아펜젤러(감리교)와 언더우드(장로교), 파란눈의 미국 선교사 가족이 동시에 제물포항에서 뭍으로 상륙하였지요. 일본을 거쳐 조선의 동향을 살펴본 후 목숨 걸고 복음을 전파해 주었지요. 선교사가 뿌린 씨앗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다시금 되돌아 봅니다. 초기에 교육선교와 의료선교가 중심을 이뤘는데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세워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학교의 효시(신교육의 발상지)가 되었지요. 배재 출신으로 개략적인 내용은 알았지만, 이번에 2권의 책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성장과 선교사역, 그리고 서해바다에서 사고를 당해서도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내용 등을 되새겨 보았네요. 조..

새만금에서 연결된 고군산군도 선유도 유람

서해바다의 고군산군도가 육지로 연결될 줄이야 예전에 미처 몰랐지요. 몇년전에 군산항에서 배타고 간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리가 놓였지요. 새만금방조제 중간에 있는 신시도에서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가 다리로 연결되어 섬의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으니 격세지감이 있지요. 명절을 맞아 5일의 연휴가 되다 보니 아이들이 우리집에 먼저 모였는데, 하루를 날잡아 선유도를 포함하는 군산 여행으로 가족 나들이를 했네요. 그날 따라 온화한 날씨로 선유도로 겨울바다 구경온 가족들이 많았네요. 군산 새만금 가는 길목에 있는 아펜젤러 순교기념관에도 들러서 왔지요. 설 연휴 가족나들이 가는 길에 아펜젤러 선교기념관을 둘러보고, 제가 배재인이라 가족들에게 선교기념관을 꼭 보여주고 싶어서..

아름다운 사람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아무도 밟지 않은 툭 트인 바다 밑 묘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묻힌 무덤 속에 헨리 게르하르트 아펜젤러는 잠들어 있다. 그는 그의 품에 영혼을 안고 천국에 들어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놀라게 한 것은 큰 소리나 대포의 연기도 아니며, 폭풍 위의 거친 숨결도 천둥도 아니다. 다만 고요하고 작은 목소리 그리스도의 목소리 뿐" - 군산시 내초동 새만금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아펜젤러 순교기념교회 기념비에서 - 쇄국정책으로 굳게 닫혀 있던 은둔의 나라 조선에 1885년 인천항으로 첫발을 디딘 아펜젤러, 20대 젊은 청년이 복음 들고 한국에 와서 배재학당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고 교회를 개척하며, 출판선교와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한국을 사랑했던 그는 무덤도 없이 서해바다에 잠들어 있다. 선박 충돌사고로 목숨을 잃었..

한국을 사랑한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기념관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포구에 갔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량진 포구에 한국최초(1816년)의 '성경전래지'가 있고, 27세의 젊은 나이에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은둔의 나라 조선에 선교사로 첫발을 디뎌, 커다란 업적을 남긴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직 기념관이 거기에 있었다. 한국에 공식적으로 파송된 첫 선교사는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였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두 선교사가 함께 인천항에 첫발을 디뎠다. 아펜젤러는 감리교, 언더우드는 장로교 선교사로서 파송을 받았다. 그들은 쇄국정책의 어려운 환경에서 교육과 의료사업을 먼저 시작했다. 아펜젤러는 1885년 우리나라 신교육의 효시가 된 배재학당을 세워 교육사업을 시작하였고, 나중에 정동제일교회 설립, 독립활동 지원, 신약성경 한글번역 등 한국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