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은 평화입니다!
국민농업포럼 - 2011년 ‘세계 식량의 날’ 메시지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매년 10월 16일은 국제연합(UN) 식량농업기구(FAO)가 정한 식량의 날입니다.
국제연합은 ‘세계 식량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일깨우고 기아와 영양실조, 가난에 함께 맞서 퇴치하기 위하여’ 1979년 ‘세계 식량의 날’을 제정하였습니다. 또한 1996년 세계식량정상회의는 ‘전 세계 기아인구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기’로 결의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07년과 2008년, 2010년의 식량위기로 기아인구는 8억5천만 명에서 10억2천5백만 명으로 오히려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20배에 이르는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집트, 카메룬, 멕시코 등 수많은 나라에서는 식량부족으로 인한 폭동과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식량위기는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담수부족, 세계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는 직접적인 식량생산의 어려움 뿐만 아니라 주요 식량생산국의 식량수출 제한조치 등으로 이어져 국제 곡물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생산이 정점에 이르러 고갈을 향해 가고 있는 석유가격의 고공행진은 전쟁과 경제 전반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농업생산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농업생산 수단인 비료, 농약, 농기계, 비닐 등 생산자재가 모두 석유에서 생산되거나 석유로 가동되고, 수확 후에도 포장에서 운송까지 전 과정이 석유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브라질, 중국 등이 앞다투어 개발하고 있는 소위 ‘바이오연료’ 정책 또한 식량위기를 가중시키는 주요 원인입니다. 화석연료와 환경문제의 대안처럼 여겨지는 농작물 추출연료로 인해 수많은 농경지가 식량생산 대신 연료생산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과 성장에 따른 농지의 소멸과 육류소비의 증가, 다국적 농식품기업들의 농업지배와 식량독점, 투기자본의 국제곡물시장 유입 등 수많은 원인들이 식량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식량사정 또한 매우 심각합니다. 2010년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6.7%이고 이마저도 쌀을 제외하면 5%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식량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농가인구와 농경지 면적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국가안보와 국민건강의 기초가 되는 안전한 식량의 안정적 공급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반면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지는 식량자원이 2005년 기준 년간 18조 원에 이르고, 처리비용만도 6천억 원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급속한 산업화와 세계화에 따른 식량의 해외의존과 식생활의 변화는 식품안전문제의 상존과 함께 비만과 당뇨병 등 이른바 ‘생활습관병’의 증가로 국민건강을 크게 위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에너지문제와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의 어려움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농산물 가격의 잦은 급등락과 수급불안정, 가축질병 등으로 농가경제는 물론 국민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이렇게 식량과 농업·농촌문제는 비단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닌 국민모두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농업·농촌문제는 단순히 자본주의 시장체제 아래서 빚어지는 경제위기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식량, 에너지, 환경생태계의 위기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쓰고 버리는 공업적 사회, 약탈적 산업문명에 기반한 우리 모두의 삶 전체의 위기인 것입니다. 이제 살아남기 위해서는 농업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농촌마을을 쾌적하게 가꾸는 길밖에 없습니다. 유기순환적이고 지속가능한 토착자원형 농업·농촌으로 전환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농업이 경제적 가치를 넘어 ‘생명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라는 것과 농촌이야 말로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자립적 생태적 삶을 일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모든 ‘생명의 못자리’라고 인식하는 농업·농촌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널리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식량 생산 외에도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과 어메니티(Amenity)는 농민 뿐 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가꾸어 가야할 공공의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도 기후변화 등에 따른 세계적인 식량위기를 반영하여 지난 7월, 2015년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25%에서 30%로 높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정부 정책과 함께 식량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안전한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실천이 매우 중요합니다. 희망적인 것은 시민사회의 자발적 노력입니다. 식생활교육운동, 도농생활협동조합운동, 로컬푸드운동, 슬로푸드운동, 학교급식운동, 도시농업운동, 귀농귀촌운동이 기후변화, 에너지, 식량문제의 대안운동이자 국민생활실천운동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분들이 다양한 형태로 참여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요구되는 운동들입니다.
국제적으로는 기아와 빈곤퇴치를 위한 노력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미흡한 것이 사실입니다. 굶주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자선활동은 지속적으로 장려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선과 시혜적 차원의 노력을 넘어,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류의 식량농업체제가 처한 위기 상황을 심각히 인식하고 식량과 농업은 다자간 또는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의 대상이 아니라 이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대상임을 선언하고 식량과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 간의 노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가칭 ‘식량주권 및 농업다양성협약’과 같은 국제협약이 필요합니다. 이는 각 국의 실정에 맞게 식량과 농업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여, 각국의 고유한 농업이 다양하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국제적 법제화를 의미합니다. 또한 초국적 기업의 농업지배와 식량독점을 규제하고, 투기자본의 국제곡물시장 개입을 차단하는 장치들도 필요합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평화(平和)는 먹을거리를 고르게 나누는데서 시작합니다. 특별히 오늘 ‘식량의 날’을 맞이하여 굶주리고 있는 수많은 북한의 동포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 동포들에게 식량을 지원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평화를 실천하는 것이며, 천부불가침의 권리이자 민주주의의 핵심요소인 인권을 보호하는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도주의적 차원의 식량지원은 전면적으로 재개되어야 하고, 어떠한 이유도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이에 대한 국민여러분의 이해와 시민사회의 적극적 지원활동을 호소합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세계적인 식량위기로 기아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깊이 성찰하며, 식량생산의 터전이자, 자연생태계의 보루인 우리의 농업·농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이 있으시길 호소합니다. 국민건강 또한 안전한 식량의 안정적 공급, 올바른 식품선택과 소비를 통해 실현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농업·농촌을 살리고 가꾸는 일이 바로 우리 자신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10월 16일
사단법인 국민농업포럼
상임대표 : 정재돈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이사장,
공동대표 : 권미혁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경주 대한영양사협회 회장, 김완배 서울대학교 교수, 김재옥 소비자시민모임 대표, 박규석 수협중앙회 경제대표, 이상국 한살림연합 상임대표, 이철수 민족예술인총연합 부회장, 최열 환경재단 대표
* '세계 식량의 날'에 받은 편지를 여러사람이 식량문제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뜻으로 여기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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