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극복하라고 주신 것, 극복할 수 있는 것”
인간의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아무 문제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악인+의인) 동일하게 문제와 고난을 주셨다.
어느 누구도 문제에서 면제될 수 없다.
다만 문제로 인해 타락하고 절망하는가?
아니면 문제를 극복하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문제투성이인 사람들의 집합체이며, 인간사에 모든 문제를 다루는 문제 백화점 가이드이다.
태양도 비도 태풍도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동일하게 주어진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나는 것도 누구에게나 차별하지 않고 찾아온다.
사고도 죽음도 질병도 실패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의인(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그 문제를 통해 하나님을 찾고 문제를 극복하는 사람이다. 악인은 그 문제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고 절망하여 문제에 종이 되어 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문제 때문에 망하고 죽는 것이 아니라,
문제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죽고 망하는 것이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의 종 바울은 날마다 죽을 만큼 힘들었다.
그러나 한번도 그일(문제+고난)로 주저앉거나 삶을 포기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문제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갔고 주와 함께 날아올랐다.
믿음은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끌어안고 주와 함께 날아올랐다.
믿음은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끌어안고 극복하게 하는 에너지이다.
우리는 문제를 없애달라고 하나님을 조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문제를 주심은 문제를 통해 성숙하고 믿음으로 문제를 극복하고 모든 문제를 인연하여서 하나님께로 더 빨리 나아오라 하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의 시급한 해결을 위해 하나님을 조르는 미숙한 신앙에서 벗어나 문제를 극복하고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는 성숙한 신앙을 달라고 하나님을 졸라야 할 것이다.
어차피 이‘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린다.
문제가 없는 인생, 문제가 없는 하루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가 있고 없고 많고 적고는 믿음생활에 상관이 없다.
믿음이 좋다고 문제가 없고 믿음이 없다고 문제가 많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문제가 있어도 넘어지거나 낙심하지 않는가 아니면 문제 때문에 넘어지고 절망하는 가이다.
지구에는 중력이 있다.
중력이란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데, 그것을 만유인력이라 한다. 특별히 지구가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을 중력이라 한다.
지구의 중력은 엄청나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한 에너지이다.
그런데 어떻게 로켓(우주선)이 지구를 떠난 대기권을 벗어날 수 있는가?
그 이유는 로켓의 추진력 때문이다. 로켓은 지구의 중력을 극복하고 대기권 밖으로 벗어나기 위하여 4천 ㎞의 속도를 낸다.
다시 말하면 중력의 힘보다 추진력(날아오르는 힘)이 더 크면 중력을 극복하고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비슷하다.
온갖 문제들이(중력)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그 중력 중심에는 마귀의 저항과 공격이 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문제 때문에 끙끙 않는가?
하나님을 떠나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는가?
이런 성도들의 신앙은 애초부터 “종이비행기 신앙”이다.
종이비행기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조금 날다가 추락한다.
중력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원에 올라가
아니면 새벽기도에 나아가
아니면 금식기도를 통해.. 조속한 문제해결을 원하는가?
나는 성도들의 기도제목 가운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추진력(영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성도들을 별로 본 기억이 없다.
이제 우리는 문제와 씨름하고 문제를 없애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어떤 문제라도 극복하고 날아오를 수 있는 추진력(믿음, 영력, 성숙함)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통해 하나님과 씨름해야 한다.
야곱과 같이..
문제는 있어도 그렇고 없어도 상관없고
많아도 그렇고 적어도 상관없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안에서는 그게 그거다.
문제는 추진력이다.
로켓의 추진력(중력탈출을 위해 만들어 내는 속도)을 위해 부스터(booster)라는 엔진을 사용한다.
그렇다.
우리를 날마다 끌어당기는 문제의 힘보다 복음의 야성(믿음+능력)이 크면 얼마든지 천성을 향하여 날아오를 수 있다.
마귀는 오늘도 한 영혼이라도 지옥으로 잡아당기려 문제를 사용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문제 때문에 자살을 하고, 믿음을 포기하고, 기도를 중단하고 시험에 드는가?
문제 때문에 주저앉는 사람은 중력에 끌려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문제를 극복하고 날아오르는 사람은 추진력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바울은 문제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문제와 고난이 많은 주의 종이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추진력(영력)이 강했다.
그래서 평생을 가시에 찔리고 고난에 허리가 휘고 상처에 심장이 타들어 갔지만
마침내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이길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바울의 영성엔진은 로켓엔진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종이비행기에서 로켓엔진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종이비행기 천대 만대가 한대의 로켓을 당할 수 없다.
마귀는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끄떡도 안하고 극복하는 사람을 보면 추락하고 떠나간다.
이런 사람은.. 세상도 문제도 마귀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칼럼을 쓰는 지금, 상당한 중력에 시달리고 있다.
손의 관절이 너무 아파, 자판 한글 자를 칠 때마다 통증이 너무 크다.
뿐만 아니라 교회와 사역에 여러 가지의 문제와 고난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성령께서 손의 통증(중력)보다 여러 가지 문제보다 더 큰 추진력을 주셨다.
견딜 수 없는 복음의 능력(추진력)이 사역을 중단시키려는 중력(문제+고난)을 뚫고 날아오르게 하고 있다.
문제가 있음은 축복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고 영이 살고 기도할 수 있으니까..
사람은 문제가 없으면 하나님을 찾지도, 기도하지도 않는다.
문제가 많아도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제힘으로 사는데..
하물며 문제가 없다면 영이 죽고 육이 살며 하나님을 멀리 멀리 떠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축복의 통로이며 하나님과 입맞춤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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