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시니어·직장선교 73

소풍처럼 행복한 한마음 전원교회 (장성)

직장 은퇴시기를 몇년 앞두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전원생활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진다. 산수좋은 전원에 아담한 집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는데 교회도 마찬가지다. 지난번 학회가 있어 광주 다녀오는 길에 장성군 남면에 멋진 전원교회를 둘러보게 되었다. '소풍처럼 행복한 한마음 전원교회'라는 교회인데, 황토와 목조로 된 그야말로 전원교회다. 목재의 아름다운 성전과 꿈나무방, 맛나방, 황토펜션, 찜질방, 넓은 잔디밭, 소나무 산책로.. 남상도 목사가 주도한 생태농업단지에 광주에서 목회하던 교회(차한섭 목사)가 이전해 왔단다. 사방이 그림처럼 멋진 전원에다 예술감각이 뛰어난 건축물과 주변경관이 너무 잘 어우러졌다. 교회건물도 목재와 흙으로 아기자기하게 지었고 강대상 뒷면 창문으로 보이는 전원도 멋지다...

아름다운 사람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아무도 밟지 않은 툭 트인 바다 밑 묘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묻힌 무덤 속에 헨리 게르하르트 아펜젤러는 잠들어 있다. 그는 그의 품에 영혼을 안고 천국에 들어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놀라게 한 것은 큰 소리나 대포의 연기도 아니며, 폭풍 위의 거친 숨결도 천둥도 아니다. 다만 고요하고 작은 목소리 그리스도의 목소리 뿐" - 군산시 내초동 새만금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아펜젤러 순교기념교회 기념비에서 - 쇄국정책으로 굳게 닫혀 있던 은둔의 나라 조선에 1885년 인천항으로 첫발을 디딘 아펜젤러, 20대 젊은 청년이 복음 들고 한국에 와서 배재학당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고 교회를 개척하며, 출판선교와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한국을 사랑했던 그는 무덤도 없이 서해바다에 잠들어 있다. 선박 충돌사고로 목숨을 잃었..

남녀유별 시대 ㄱ자형 금산교회(김제)

김제시 금산사 입구에 있는 금산교회는 우리나라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ㄱ자형 초대교회이다. 금산교회는 1905년 미국 선교사 테이트(Lews Boyd Tate)가 처음 세웠으며 1908년 이 자리에 지어졌다. 교회를 설립하는데는 테이트가 이곳에 와서 전도한 조덕삼, 이자익, 박화서, 왕순칠 등의 도움이 컸다. 이들은 장로와 목사가 되어 1900년대 우리나라 초기교회의 발전에 큰 자취를 남긴 인물이 되었다. 조덕삼 집안의 마부였던 이자익이 장로투표에서 먼저 장로로 당선되었는데 겸허히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자익의 신학공부를 도와 목사가 되게 하고 후일 장로회 총회장으로 큰 역할을 하게 한 일화로 유명하다. 이자익 목사는 마부의 신분에서 주인의 후원으로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총회장을 3회 연임했..

한국을 사랑한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기념관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포구에 갔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량진 포구에 한국최초(1816년)의 '성경전래지'가 있고, 27세의 젊은 나이에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은둔의 나라 조선에 선교사로 첫발을 디뎌, 커다란 업적을 남긴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직 기념관이 거기에 있었다. 한국에 공식적으로 파송된 첫 선교사는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였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두 선교사가 함께 인천항에 첫발을 디뎠다. 아펜젤러는 감리교, 언더우드는 장로교 선교사로서 파송을 받았다. 그들은 쇄국정책의 어려운 환경에서 교육과 의료사업을 먼저 시작했다. 아펜젤러는 1885년 우리나라 신교육의 효시가 된 배재학당을 세워 교육사업을 시작하였고, 나중에 정동제일교회 설립, 독립활동 지원, 신약성경 한글번역 등 한국교회..

DR콩고에 온 수원지역 대학생 선교팀

수원지역 대학생선교회(CCC) 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콩고로 선교여행을 왔다. CCC 회관에서 숙식하며 킨샤사대학과 몇몇 대학을 순회하며 선교활동을 한단다. 경희대, 아주대 등 대학생 17명이 1월 15일(토) 선교현장 라무르교회를 방문했다. 선교사님께 콩고 선교현황을 듣고 각자 비전을 나누며 인근 마을도 둘러보았다. 학생시절 어려운 현장을 둘러보고 비전을 가다듬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처음에 다른 곳은 많았는데 콩고로 가겠다고 지원한 학생이 5명밖에 안되었단다. 준비하다 보니 어려운 곳으로 가보자는 마음이 작용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단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체험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고향 까마귀가 반갑다고, 수원지역의 젊은 대학생들이 단체로 콩고에 왔다. 한국선교사..

DR콩고 라무르교회 선교비전 현장

아프리카 오지에서 복된소식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선교사님들의 노고를 생각한다. 라무르교회를 세우고 다시 더 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준비하는 현장에도 가보았다. 킨샤사 공항에서 북쪽으로 30분쯤 가면 전원주택지로 새로 개발되는 신도시가 있다. 여기에 5ha의 땅을 장기임대로 불하받아 학교와 병원까지 종합선교센터를 짓는다. 1885년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먼저 학교와 병원을 설립했던 것을 회상한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배재학당과 정동교회, 언더우드 선교사는 연희전문과 새문안교회, 그밖에 이화학당과 경신학교 등 수많은 학교와 병원들을 통해 선교사업을 시작했다. 빈곤으로 신음하는 콩고 땅에 라무르 선교센터를 통해 복음이 확산되기를 기원한다. 사막에 샘물이 흐르고 황무지가 옥토로 변하듯 비전이 실현되기를 ..

양화진의 절두산 순교성지 성지순례

서울의 마포나루 한강변의 양화진에 가면 조그만 동산 위에 '절두산 순교성지'가 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순교 사적지로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던 곳이다. 1967년 병인박해 100년을 맞아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기념성당과 박물관을 건립했다. 1984년에 한국천주교 200주년과 103위 순교자 시성식을 위해 요한 바오로 교황이 방문하였다. 구한말 쇄국정책으로 문을 걸어닫고 있을 때 병인박해로 9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순교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프랑스 함대가 1866년 9월과 10월에 무력으로 조선을 침범하였다. 조선정부는 프랑스함대와 교전 후 천주교 신자들을 여기에서 처형하였다. 이유는 프랑스 함대가 올라왔던 한강 양화진에서 신자들을 처형함으로써 책임을 전가하고..